제자 칼럼

은혜가 필요합니다 (박용태목사)

본문

교회 안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은혜”이고, 어쩌면 가장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 “은혜”인 것 같습니다. ‘은혜 아니면 서지 못한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은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은혜를 경험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대부분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비슷한 데다, 너무 세속적일 때가 많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설령 그 꿈을 이루는 순간에조차 은혜의 감격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욕망에 매인 삶일 뿐이요, 하나님께 매인 삶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묵상하는 룻기를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은혜의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부어지는 것입니다.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에 대한 목마름,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럼에도 은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은혜로운(?) 방식으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는 너그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은혜는 본질적으로 분에 넘치는 대접이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부어지는 사랑입니다. 은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누군가가 다른 연약한 영혼을 위해 손을 내밀고,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줄 때 은혜가 흘러나옵니다.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라도 풍성한 선물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잘 해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찮은 사람을 하찮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극진히 대접해 줄 때 은혜가 증폭되어 나타납니다. 서로에게 사랑의 빚을 지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롬5:8). 그 사랑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넉넉한 사랑으로 품어 주기 시작하면서 은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은혜는 위로하는 말,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을 통해 전달될 수 있습니다(룻2:13, 골4:6). 은혜를 누리고 싶다면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말보다 싸매어 주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히10:24). 서로 힘겨루기 하거나, 시기/질투에 매어 공격하는 말을 버리고, 서로 응원하며 힘을 북돋우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고, 은혜 가운데 회복되는 영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은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납니다. 기본적으로 은혜는 타락한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거나, 즐거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사람이 은혜의 원천,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보아스, 사도행전의 바나바 같은 사람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기대할 수 있는 복입니다(룻2:12, 렘29:12-13, 히11:6). 우리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은혜가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박용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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