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20.02.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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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과거에는 전염병을 역병(疫病) 또는 괴질(怪疾)이라고 불렀습니다. 병의 원인을 몰랐고, 치료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괴질이 되었고, 귀신의 소행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에 역병이 되었습니다. 역병/괴질이라고 부를 때 그 바탕에는 무지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이 배어 있습니다. 요즘 역병이나 괴질은 없습니다. 과거에 역병이나 괴질로 불렀던 전염병이 실상 천연두나 장티푸스, 콜레라 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결핵에 걸리면 죽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치료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결핵에 걸리는 분들이 간혹 있지만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핵균의 정체와 치료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종코로나감염증 때문에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온 세계를 사로잡는 공포감의 근본 원인은 <무지> 때문입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대처하고 치료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요컨대 무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고 삶을 마비시킵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병증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결국 밝혀질 것이고, 치료법도 발견이 될 것입니다. 설령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해도 회복가능성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격리 치료를 받았던 확진자들이 치료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해서 퇴원을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치료하고 회복되는 사람 수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대 사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전염병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전염병 때문에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전혀 몰랐던 고대 사람들은 얼마나 더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고대사회 전염병이 돌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힘껏 더 신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91:6)” 외쳤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 안에 엄청난 전염병이 정기적으로 밀려닥쳤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사랑과 형제애를 발휘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끊임없이 병자를 돌아보았고(중략) 그들과 함께 지극히 기분 좋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시신을 맨손으로 품에 안아다가 눈을 깨끗이 해주고 입을 닫아주었으며, 그들을 어깨에 지고 가서 사지를 가다듬고 포옹했고, 그들을 단정히 씻기고 수의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곧 자기 자신도 같은 의식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이와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병들어 앓기 시작한 사람들을 쫓아냈으며 사랑하는 친구들도 멀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을 길에 내다버렸고, 죽은 자들을 매장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방하고 조심해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7권 22장).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에 매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매여 있는 시대, 더욱 예수님을, 영원한 소망을 더욱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고대 사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전염병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시대에도 전염병 때문에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전혀 몰랐던 고대 사람들은 얼마나 더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고대사회 전염병이 돌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힘껏 더 신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91:6)” 외쳤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 안에 엄청난 전염병이 정기적으로 밀려닥쳤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사랑과 형제애를 발휘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끊임없이 병자를 돌아보았고(중략) 그들과 함께 지극히 기분 좋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시신을 맨손으로 품에 안아다가 눈을 깨끗이 해주고 입을 닫아주었으며, 그들을 어깨에 지고 가서 사지를 가다듬고 포옹했고, 그들을 단정히 씻기고 수의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곧 자기 자신도 같은 의식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이와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병들어 앓기 시작한 사람들을 쫓아냈으며 사랑하는 친구들도 멀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을 길에 내다버렸고, 죽은 자들을 매장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방하고 조심해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7권 22장).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에 매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매여 있는 시대, 더욱 예수님을, 영원한 소망을 더욱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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