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 복이 되게 하십니다 박진문목사(전주제자교회)
2019.10.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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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할 때 가나안의 왕들은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자 합니다. 그 때에 가나안 민족이면서 동맹한 쪽에 서지 않고, 되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와 화친을 맺고자 했던 사람들이 히위 족속 기브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연구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민족들은 진멸해야 한다는 내용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 위해 먼 곳에서 온 것처럼 자신들을 꾸미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을 맺습니다. 그러나 3일이 지나서 그들의 정체가 들통 나고 맙니다.
정체를 알게 된 여호수아는 9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기브온 주민들을 저주하는데 그 내용은 대를 이어 ‘내 하나님의 집(성전)’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저주였을까요? 또한 한 가지 의문점은 9장에 나오는 기브온 주민들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서 꾸중하실 만 한데 하나님의 반응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0장에서는 위기에 처한 기브온 주민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을 통해 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 기브온 주민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분명히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수9:24). 그리고 그들은 그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하시겠다고 하시면 분명히 하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즉 언약의 자손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지만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종의 신분이 되어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그 앞에 고꾸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 다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용납해주시고 성전을 위해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니을 알려고 하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매달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또한 선민공동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경건한 곳에 이방인의 손길이 묻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결국 모든 민족, 모든 열방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택함 받은 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연구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민족들은 진멸해야 한다는 내용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 위해 먼 곳에서 온 것처럼 자신들을 꾸미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을 맺습니다. 그러나 3일이 지나서 그들의 정체가 들통 나고 맙니다.
정체를 알게 된 여호수아는 9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기브온 주민들을 저주하는데 그 내용은 대를 이어 ‘내 하나님의 집(성전)’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저주였을까요? 또한 한 가지 의문점은 9장에 나오는 기브온 주민들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서 꾸중하실 만 한데 하나님의 반응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0장에서는 위기에 처한 기브온 주민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손을 통해 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방인’ 기브온 주민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분명히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수9:24). 그리고 그들은 그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하시겠다고 하시면 분명히 하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즉 언약의 자손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지만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종의 신분이 되어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그 앞에 고꾸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 다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을 용납해주시고 성전을 위해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니을 알려고 하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매달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또한 선민공동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경건한 곳에 이방인의 손길이 묻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결국 모든 민족, 모든 열방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택함 받은 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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