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 때를 따라 주님 바라보세요.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19.06.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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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 주님은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다는 것은 적절한 때, 꼭 필요한 순간에 형편에 알맞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누리려면 때를 따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마치 이정표와 같습니다. 갈림길마다, 중요한 고비마다 방향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데, 때를 따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신호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 그냥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무슨 마술 같은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세상 역사가 그저 우연히 아무런 방향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서 예수님을 통해 고통과 슬픔에 싸인 세상을 회복하시려고 치밀하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이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보아스를 기억하십니까? 흉년이 들어서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재산과 가족을 잃어버린 나오미와 이방인 여인 룻을 돕기 위해 헌신했던 베들레헴 시골 노인/아저씨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만난 것은 우연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도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룻2:3-4)
<우연히>, <마침> 이루어진, 이 만남은 단순히 우연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우연한 사건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보아스는 이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율법이 명령하는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감당했고, 그를 통해 희년을 성취하는 예수님의 사역이 준비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섭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섭리의 발판, 실마리를 준비한 사건이 보아스와 룻의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만남, 우연한 사건이라도 성심을 다해야 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만난 것은 그저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그 만남 속에서 보아스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성심껏 가난한 여인을 돌보아 준 것이 놀라운 은혜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가난한 룻에게는 보아스의 호의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방여인 룻을 위한 보아스의 호의는 단순히 그 시대만을 위한 은혜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희생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어떻게 거룩한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는지를 보여주는 섭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성심껏, 믿음과 순종함으로 주님께 응답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 그냥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무슨 마술 같은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세상 역사가 그저 우연히 아무런 방향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서 예수님을 통해 고통과 슬픔에 싸인 세상을 회복하시려고 치밀하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이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보아스를 기억하십니까? 흉년이 들어서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재산과 가족을 잃어버린 나오미와 이방인 여인 룻을 돕기 위해 헌신했던 베들레헴 시골 노인/아저씨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만난 것은 우연한 사건입니다. 성경에서도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룻2:3-4)
<우연히>, <마침> 이루어진, 이 만남은 단순히 우연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우연한 사건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보아스는 이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율법이 명령하는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감당했고, 그를 통해 희년을 성취하는 예수님의 사역이 준비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섭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섭리의 발판, 실마리를 준비한 사건이 보아스와 룻의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만남, 우연한 사건이라도 성심을 다해야 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만난 것은 그저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그 만남 속에서 보아스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성심껏 가난한 여인을 돌보아 준 것이 놀라운 은혜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가난한 룻에게는 보아스의 호의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방여인 룻을 위한 보아스의 호의는 단순히 그 시대만을 위한 은혜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희생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어떻게 거룩한 은혜의 역사를 이루시는지를 보여주는 섭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성심껏, 믿음과 순종함으로 주님께 응답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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