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난민이었습니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18.07.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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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 사회에 난민 문제에 대하여 말들이 많고, 심지어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청와대 청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난민들은 대부분 무슬림이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안감 때문에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고 하는 것은 그렇다할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난민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양심에 비추어 보거나, 특히 성경에 비추어 볼 때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요,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는 난민신세로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난민의 후예요 난민들로부터 배운 믿음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난민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난민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9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은 난민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적국이란, 근대적 개념의 국가가 형성된 이후 현대적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박해 받을 위험 때문에 태어난 곳,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등도 사실상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만 무엇보다 에서를 피해 밧단 아람에서 살아야 했던 야곱을 생각해 보세요. 애굽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미디안으로 도망가야 했던 모세는 또 어떻습니까? 사울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광야를 유랑하며 이러 저리 떠돌아 다녀야 했던 다윗은 확실한 난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애굽으로 내려갔던 예레미야나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다니엘과 세 친구,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 무엇보다 헤롯의 박해를 피해 어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애굽으로 도망쳐야 했던 요셉과 마리아는 난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난민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죽고 난 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초대교회 성도들, 안디옥에서 비로소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이름 없는 성도들은 모두 난민이었습니다. 성경은 난민들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난민을 거부하자고 주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난민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에 난민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정말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세계 16억에 달하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습니까? 그 곳에서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우리 곁에 스스로 찾아온 수백 명 무슬림도 두려워 제대로 품지 못한다면 어떻게 16억 무슬림에게 선교하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난민들을 통해 전수 받은 믿음의 후예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난민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안감 때문에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고 하는 것은 그렇다할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난민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양심에 비추어 보거나, 특히 성경에 비추어 볼 때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요,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는 난민신세로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난민의 후예요 난민들로부터 배운 믿음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난민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난민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9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은 난민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적국이란, 근대적 개념의 국가가 형성된 이후 현대적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박해 받을 위험 때문에 태어난 곳,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등도 사실상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만 무엇보다 에서를 피해 밧단 아람에서 살아야 했던 야곱을 생각해 보세요. 애굽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미디안으로 도망가야 했던 모세는 또 어떻습니까? 사울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광야를 유랑하며 이러 저리 떠돌아 다녀야 했던 다윗은 확실한 난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애굽으로 내려갔던 예레미야나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다니엘과 세 친구,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 무엇보다 헤롯의 박해를 피해 어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애굽으로 도망쳐야 했던 요셉과 마리아는 난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난민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죽고 난 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초대교회 성도들, 안디옥에서 비로소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이름 없는 성도들은 모두 난민이었습니다. 성경은 난민들의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난민을 거부하자고 주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난민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에 난민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정말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세계 16억에 달하는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습니까? 그 곳에서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우리 곁에 스스로 찾아온 수백 명 무슬림도 두려워 제대로 품지 못한다면 어떻게 16억 무슬림에게 선교하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난민들을 통해 전수 받은 믿음의 후예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난민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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