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으로부터 받은 환대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18.07.0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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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년 전 같은 노회 소속 목사님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은 이른 바 <성지>라고 알려진 곳들이 실상 <성지>라기보다는 장사치들의 탐욕으로 물들여진 슬픔과 고통의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성경 사건들의 배경으로서 그 땅의 지리와 기후, 문화와 풍습 등은 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우리교회 식구들을 모시고 그 땅을 순례하고 싶은 소망을 품었습니다. 수년간 벼르고 준비한 끝에 올해 초 드디어 20여분 성도들과 함께 <성지순례>가 아닌 <성경지리답사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관광지나 기념교회 중심이 아닌, <성경지리답사여행>을 위해서는 준비가 좀 필요했습니다. 사전공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여행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줄 적절한 안내자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어느 유명인사가 우리를 책임지고 안내해주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가 무단으로 파기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결국 더 성실한 안내자를 만나서 <성지순례>가 아닌 <성경지리답사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 광야의 브솔시내로부터 바산 골란을 지나 헐몬산 입구까지, 브엘세바와 단, 그 외에도 실로, 세겜, 사마리아 등 중요한 지역들을 보고 걸으면서 듣고, 만져 보고, 냄새 맡고, 먹으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성경지리답사여행>의 백미는 단순히 고대역사의 지리적 배경을 확인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 땅의 현재 정황을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교계 안에 종말에 대한 소망을 이유로 <민족으로서 유대인 회복>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허다한 이 때, 유대인에 의해 박해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실상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들, 콘크리트장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팔레스타인마을의 어두운 모습과 방황하는 젊은이들,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 뿐만 아니라 젊은 이스라엘군인들이 진치고 있는 검색대 앞에서 자존심을 다 내려놓은 팔레스타인여성의 쓸쓸한 뒷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해진 일정을 다 마친 후 몇 분 지원자들만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이 처음에는 친구집 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따라나섰습니다.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면서 찬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 베들레헴 인근 난민촌 골목을 걸어가던 어느 순간, 안내자가 정해 둔 목적지 없이 우리를 그냥 무작정 끌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뒤따라가던 중 난민촌 깊숙한 골목 모퉁이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몇몇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 집에서 놀다 돌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집 주인에게 인사를 했더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집에, 누군지도 모를 이방인들이 들어간 것입니다.
문을 열어 주었던 부부는 무슬림이었습니다. 난민촌에서 태어나서 난민촌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한 때 난민촌에서 활동하는 NGO단체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남편만 장벽 넘어 이스라엘 지역으로 가서 일용직 노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두 딸과 그보다 어린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10대 중반인 큰 딸은 우리 119대원 같은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시위 현장에서 크고 작은 부상들에 대처하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이냐고 했더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어떻게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 일행을 집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한밤중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 밖에 세워둘 수 없어서 들어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밤에 우리는 따뜻한 차와 시원한 음료 등 세 번이나 잔을 바꾸어 마셔야 했습니다. 비록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사진만 찍고 헤어졌지만 그 날 밤 그 경험은, 난민으로 내몰린 채 소망 없이 살고 있는 무슬림 중에는 누군지도 모를 낯선 이방인을 단지 밤바람 차가운 곳에 세워둘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으로 청해 들여서, 없는 살림에 세 번이나 찻잔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풍성하게 대접해줄 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나, 최근 예멘 난민들에 대한 기사를 대할 때,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떠듬거리는 말로 어색한 대화를 나누면서 연거푸 차를 권하던 팔레스타인 난민 부부, 부끄러워하는 기색 완연했지만 손님접대를 위해 엄마의 심부름을 착실하게 하던 여자아이들, 그리고 낯선 이방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방안을 뛰어 다니던 어린 사내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갈 곳 없는 난민이요 무슬림이었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분들에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했고, 그들과 함께 그 가정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밤 동행했던 우리 일행은 난민촌에 살고 있는 그들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번 <성경지리답사여행>의 백미는 단순히 고대역사의 지리적 배경을 확인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 땅의 현재 정황을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교계 안에 종말에 대한 소망을 이유로 <민족으로서 유대인 회복>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허다한 이 때, 유대인에 의해 박해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실상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들, 콘크리트장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팔레스타인마을의 어두운 모습과 방황하는 젊은이들,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 뿐만 아니라 젊은 이스라엘군인들이 진치고 있는 검색대 앞에서 자존심을 다 내려놓은 팔레스타인여성의 쓸쓸한 뒷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해진 일정을 다 마친 후 몇 분 지원자들만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이 처음에는 친구집 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따라나섰습니다.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면서 찬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 베들레헴 인근 난민촌 골목을 걸어가던 어느 순간, 안내자가 정해 둔 목적지 없이 우리를 그냥 무작정 끌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뒤따라가던 중 난민촌 깊숙한 골목 모퉁이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몇몇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 집에서 놀다 돌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집 주인에게 인사를 했더니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집에, 누군지도 모를 이방인들이 들어간 것입니다.
문을 열어 주었던 부부는 무슬림이었습니다. 난민촌에서 태어나서 난민촌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한 때 난민촌에서 활동하는 NGO단체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남편만 장벽 넘어 이스라엘 지역으로 가서 일용직 노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두 딸과 그보다 어린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10대 중반인 큰 딸은 우리 119대원 같은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시위 현장에서 크고 작은 부상들에 대처하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공부할 것이냐고 했더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어떻게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 일행을 집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한밤중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 밖에 세워둘 수 없어서 들어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밤에 우리는 따뜻한 차와 시원한 음료 등 세 번이나 잔을 바꾸어 마셔야 했습니다. 비록 다시 만날 기약 없이 사진만 찍고 헤어졌지만 그 날 밤 그 경험은, 난민으로 내몰린 채 소망 없이 살고 있는 무슬림 중에는 누군지도 모를 낯선 이방인을 단지 밤바람 차가운 곳에 세워둘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으로 청해 들여서, 없는 살림에 세 번이나 찻잔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풍성하게 대접해줄 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나, 최근 예멘 난민들에 대한 기사를 대할 때,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떠듬거리는 말로 어색한 대화를 나누면서 연거푸 차를 권하던 팔레스타인 난민 부부, 부끄러워하는 기색 완연했지만 손님접대를 위해 엄마의 심부름을 착실하게 하던 여자아이들, 그리고 낯선 이방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방안을 뛰어 다니던 어린 사내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갈 곳 없는 난민이요 무슬림이었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분들에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했고, 그들과 함께 그 가정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밤 동행했던 우리 일행은 난민촌에 살고 있는 그들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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