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 붙잡고 십자가 짊어지세요.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18.05.02 19:53
6,237
0
0
본문
기독교 승리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발판으로 해서 성공과 승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언제나 건강하고 만사형통하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무슨 꿈이든지 이루어 낼 수 있고, 세상의 높은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믿기만 하면 크고 강하고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과 얼마나 다른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승리주의적인 복음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기독교 승리주의는 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상 탐욕을 기독교적으로 덧칠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교묘한 방식으로 왜곡된 복음이 교회를 얼마나 많이 어지럽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에 우리는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가는 디딤돌입니다.
신학용어 중에 그리스도의 비하, 그리스도의 승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라고도 하는데, 낮아지심이란 예수님의 성육신과 순종하는 삶,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리키는 말이고, 높아지심이란 예수님의 부활, 승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 재림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요컨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승귀하신 예수님, 높임 받으신,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이나 다른 바울서신을 잘 읽어보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틀림없이 부활에 관한 말씀, 영원한 승리에 대한 말씀, 소망에 대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실상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말할 때는 일관되게 고난, 겸손, 낮아지는 삶에 대하여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영광가운데 계신,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바울이 정작 낮아지신 예수님,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더 자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 분명히 영원한 승리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려 할 때는 치러야 할 대가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영광과 승리에 대한 소망을 확실하게 부여잡고, 타락한 세상에서는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과 슬픔이라도 즐겁게 짊어지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난당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삶 속에서 경험적으로 아는 예수님, 바울이 따랐던 예수님은 고난 받으신 예수님,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역설적인 삶을 가능하게 만듭니다(롬8:17-18). 기독교 승리주의가 아니라 부활에 소망을 품고, 타락한 세상을 십자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도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에 우리는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으로 이끌어가는 디딤돌입니다.
신학용어 중에 그리스도의 비하, 그리스도의 승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라고도 하는데, 낮아지심이란 예수님의 성육신과 순종하는 삶,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리키는 말이고, 높아지심이란 예수님의 부활, 승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 재림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입니다. 바울은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으로부터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요컨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승귀하신 예수님, 높임 받으신,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이나 다른 바울서신을 잘 읽어보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틀림없이 부활에 관한 말씀, 영원한 승리에 대한 말씀, 소망에 대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실상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말할 때는 일관되게 고난, 겸손, 낮아지는 삶에 대하여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영광가운데 계신,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바울이 정작 낮아지신 예수님,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더 자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 분명히 영원한 승리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려 할 때는 치러야 할 대가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14:22)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영광과 승리에 대한 소망을 확실하게 부여잡고, 타락한 세상에서는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과 슬픔이라도 즐겁게 짊어지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난당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삶 속에서 경험적으로 아는 예수님, 바울이 따랐던 예수님은 고난 받으신 예수님, 죽음을 맛보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역설적인 삶을 가능하게 만듭니다(롬8:17-18). 기독교 승리주의가 아니라 부활에 소망을 품고, 타락한 세상을 십자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도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0
로그인 후 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