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가족이 필요합니다. 박진문목사(전주제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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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날씨가 정말 추운 것 같습니다. 영하 밤과 새벽에는 영하 14°, 낮에도 영하 7°에 이르니 말입니다. 전주에 오래사신 분들이야 이런 추위가 익숙하실 수도 있겠지만 5년에 한번 눈이 올까 말까한 곳에서 살다가온 저에게는 수일동안 쌓여 녹지 않는 눈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런 추위가 참 매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마음까지 춥지 않은 것은 힘이 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고, 이런 저에게 “부산에서 와서 많이 춥죠? 힘내세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성도님들/이웃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 ‘고독사’, ‘고립사’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충북 청주시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80세 할머니가 숨진 지 1주일 만에 발견됐다는 뉴스, 같은 도시에서 92살 되는 할머니가 추위에 밖에 나가셨다가 쓰러지신 뒤 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를 듣고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혼자 생활하시던 분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죽음을 ‘고독사’, 또는 ‘고립사’라고 부릅니다. 고독사는 ‘혼자 생활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고립사는 ‘사회적인 단절과 고립된 상태’라는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고독사 대신 ‘고립사’를 사용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생각됩니다.
고독은 누구나 선택이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독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고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립은 다릅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고립은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가족의 해체, 경제적 문제 등 사회적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홀로 계신 분들의 사회적 관계의 단절과 고립을 끊어줄 ‘가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웃’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이웃이라는 단어에는 ‘사이’, ‘지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가족사이, 가족지간, 이웃사이, 이웃지간…. 가족과 이웃은 일방통행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쌍방통행이어야 하고 관계적이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을 묵상하다가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 이르러 만난 자들을 기억해 봅니다. 베드로는 룻다와 욥바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인물은 룻다의 중풍병자인 애니아, 욥바의 여제자인 도르가(다비다), 그리고 무두장이 시몬입니다. 이들 셋의 공통점은 그 사회의 약자와 고립인입니다. 오랫동안 병으로 고통 받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채 고립되었을 애니아와 도르가, 그리고 천한 직업으로 사람들로부터 천대받고 죄인 취급받았을 시몬, 이들은 그 사회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고립된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을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로 받아들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들의 가족, 이웃이 되어줍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족이 필요하신 분들, 이웃이 필요하신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신 분들,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들, 홀로사시는 어르신들 모두 누군가가 가족과 이웃이 되어드려야 할 분들입니다.
이 추운 겨울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그들을 따뜻한 교회 안으로, 공동체 안으로 데려와 참 가족 됨과 이웃됨을 경험시켜주면 어떨까요? 우리 전주제자교회를 통해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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