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산당 신앙을 극복합시다.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열왕기서를 묵상하다보면 <산당>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옵니다. 열왕기서에서 산당은 대개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처음부터 산당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선지자는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부름 받은 사울이 사무엘을 처음 만난 곳이 산당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 받았던 곳이 기브온에 있던 큰 산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본적으로 산당은 허물어버려야 할 가나안의 흔적이었습니다(민33:52). 하나님의 백성들은 산당 같은 데서 예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곳,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 나와 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신12:4-5).
사무엘이나 솔로몬 등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거나 기도를 드렸다고 해서 산당예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실로 성막이 무너지고, 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이루어졌던 특별한 사례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역사 안에 영적 쇄신과 부흥이 일어날 때는 산당을 허물어 버립니다(왕하18:4). 영적으로 타락할 때는 도리어 산당을 세웁니다(왕상 14:23, 왕하17:9). 또 영적 개혁이 일어나지만 2% 부족할 때, 다 잘 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는 못했다는 식의 아쉬운 평가를 내립니다(왕상 15:14, 22:43, 왕하 12:3, 15:4, 35).
산당이 왜 문제가 될까요? 왜 성경이 산당을 부정적으로 평가할까요? 산당이 가나안 토속신앙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당신앙은 우리문화 속에 배어 있는 무당종교와 같습니다. 세상에 종교가 없는 문화, 기도가 없는 사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 모든 기도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신앙인가, 무엇을 위한 기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산당신앙의 핵심은 산당에서 예배드리거나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산당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 영험한 자리에서 더 간절한 기도를 드리려고 합니다. 정성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기도를 듣는 신(神)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신(神)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일 - 그것이 산당종교의 목적입니다.
예배의 참된 목표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기준에서 볼 때 예배의 성패는 내가 얼마나 유익을 얻었느냐, 예배를 통해 내가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느냐는 것으로 좌우되는 것입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예배를 통해 내가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느냐? 내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산당예배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소원을 이루는 예배입니다. 정작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신(神)의 변화를 요구하는 산당예배는 우상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우상종교와 다를 바 없는 산당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예배가 산당예배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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