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극장은 다릅니다(박용태목사님)
2013.05.0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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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교회와 극장은 다릅니다.
박용태목사
오늘날 예배당을 극장 같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앉아 있지만 서로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다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만 구경하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듣는 중에 울고 웃으면서 일종의 카다르시스를 경험하는데 그것을 극장에서는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교회에서는 은혜 받았다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 집니다. 그런 비판이 어느 정도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을 정기적으로 출입하지만 어느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은 채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요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듣기에 그런 말은 ‘제발 저에게 관심을 좀 가져 주세요.’하는 비명처럼 들립니다만 자신을 모르는 척, 없는 척 해 달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다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에서조차 혼자 있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조차 실상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영혼 깊은 곳에 어떤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사람에게는 반드시 혼자 있을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정돈할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길어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내면의 어지러움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을 정돈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대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거리와 깊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아픔을 겪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극장처럼 변해 가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은혜와 카다르시스는 다릅니다. 은혜는 반드시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흘러오는 것입니다. 인격적 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은 영적 체험은 아무리 환상적인 것일지라도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반드시 우리를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를 넘어서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교회는 항상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더 큰 범위의 대가족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외동아들, 외동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형제자매 중에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영적 가족관계 속에 편입됩니다. 교회는 그런 영적 가족관계를 구현하고 또 경험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또 교회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붙들어 주는 새로운 관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설령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크고 깊을지라도, 먼저 상처 입은 치유자 - 예수님이 만져 주시고 고쳐 주십니다. 교회는 극장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분의 눈을 한번 조용히 들여다보시고 지친 손을 꼭 붙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4월 23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오늘날 예배당을 극장 같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앉아 있지만 서로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고, 다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만 구경하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듣는 중에 울고 웃으면서 일종의 카다르시스를 경험하는데 그것을 극장에서는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교회에서는 은혜 받았다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 집니다. 그런 비판이 어느 정도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을 정기적으로 출입하지만 어느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은 채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고,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라고 요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듣기에 그런 말은 ‘제발 저에게 관심을 좀 가져 주세요.’하는 비명처럼 들립니다만 자신을 모르는 척, 없는 척 해 달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다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에서조차 혼자 있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조차 실상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은 영혼 깊은 곳에 어떤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사람에게는 반드시 혼자 있을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정돈할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길어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내면의 어지러움이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을 정돈하는 일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대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거리와 깊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아픔을 겪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극장처럼 변해 가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은혜와 카다르시스는 다릅니다. 은혜는 반드시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흘러오는 것입니다. 인격적 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은 영적 체험은 아무리 환상적인 것일지라도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반드시 우리를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를 넘어서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교회는 항상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더 큰 범위의 대가족을 지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외동아들, 외동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형제자매 중에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영적 가족관계 속에 편입됩니다. 교회는 그런 영적 가족관계를 구현하고 또 경험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또 교회 안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붙들어 주는 새로운 관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설령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크고 깊을지라도, 먼저 상처 입은 치유자 - 예수님이 만져 주시고 고쳐 주십니다. 교회는 극장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분의 눈을 한번 조용히 들여다보시고 지친 손을 꼭 붙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4월 23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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