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의 능력(박용태목사님)
2012.11.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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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약함의 능력
박용태목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중요한 상징물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배당뿐만 아니라 안방이나 거실 한복판에 걸려있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최후 승리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처럼 십자가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찬송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십자가가 실상은 연약함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면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이 다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는 거의 인간 같지 않은 못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십자가에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당연히 혐오스러운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적들은 빌라도 앞에서 데모를 벌이면서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고 했고 예수님은 그들의 흉계에 빠져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예수님은 패배한 꼴로 보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우리가 보기에도 대단히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약합니다. 무슨 힘과 능력을 가진 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처럼 무기력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어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와 온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를 믿는 까닭은 그처럼 연약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던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님이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시고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과 의지를 다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그처럼 낮고 연약한 모습을 통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영광을 얻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연약함을 통해 승리를 얻으신 분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연약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한계에 부딪히고 넘지 못할 장애물 앞에서 인생의 바닥을 칠 때도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하는 식의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연약함이나 무기력함을 깨닫게 될 때마다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합니다. 우리는 인간이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연약함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실패자나 낙오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멋진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얼마나 많은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떡해든 자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경쟁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능력은 연약함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100세나 되어 이삭을 낳았던 아브라함이나 떨기나무 불꽃 중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연약함은 하늘의 아버지 앞에 나갈 수 있는 발판이요 하늘의 은혜와 큰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연약함에 매어 있지 않습니다. 연약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항상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오세요. 놀라운 은혜와 죽음을 이기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11월 6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중요한 상징물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배당뿐만 아니라 안방이나 거실 한복판에 걸려있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최후 승리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처럼 십자가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찬송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십자가가 실상은 연약함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면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이 다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는 거의 인간 같지 않은 못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십자가에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당연히 혐오스러운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적들은 빌라도 앞에서 데모를 벌이면서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고 했고 예수님은 그들의 흉계에 빠져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예수님은 패배한 꼴로 보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우리가 보기에도 대단히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약합니다. 무슨 힘과 능력을 가진 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처럼 무기력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어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와 온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를 믿는 까닭은 그처럼 연약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던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님이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시고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과 의지를 다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그처럼 낮고 연약한 모습을 통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영광을 얻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연약함을 통해 승리를 얻으신 분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연약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한계에 부딪히고 넘지 못할 장애물 앞에서 인생의 바닥을 칠 때도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하는 식의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연약함이나 무기력함을 깨닫게 될 때마다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합니다. 우리는 인간이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연약함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실패자나 낙오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멋진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얼마나 많은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떡해든 자랑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경쟁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참된 능력은 연약함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100세나 되어 이삭을 낳았던 아브라함이나 떨기나무 불꽃 중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연약함은 하늘의 아버지 앞에 나갈 수 있는 발판이요 하늘의 은혜와 큰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연약함에 매어 있지 않습니다. 연약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항상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오세요. 놀라운 은혜와 죽음을 이기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11월 6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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