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싸움은 도덕적인 싸움입니다(박용태목사)
2013.10.19 13:35
6,682
0
0
본문
영적인 싸움은 도덕적인 싸움입니다.
박용태목사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과 마귀에 대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싸움에 대하여 오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가끔 우리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땅밟기기도>처럼 영적인 싸움을 마귀와 어둠의 권세에 대항하는 주술적인 차원의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미 이루신 일입니다.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이 완성하신 일을 반복하기 보다는 예수님이 이루신 승리를 토대로 예수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깨끗하고 정결한 삶을 살면서 어둠의 권세에 매인 세상 안에 은혜의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도덕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구약성경을 읽는 분들이 자주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적을 아예 진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 있는 것을 다 죽이고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것은 아주 잔인한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대단히 잔혹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시 문화에 비추어 읽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되던 시대는 약탈이 만연한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약탈을 노리는 부족 간의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족 간의 전쟁을 통해서 약탈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횡재하는 셈이었습니다. 상대부족의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소와 양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다 탈취했습니다. 아이들은 노예로 삼고, 여자들을 끌어 와서 자기 부족의 자녀들을 더 많이 생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고, 승리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얻는 셈이었습니다. 전쟁이야말로 고대사회 욕망 충족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는 악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잔혹한 싸움을 일상적으로 벌이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워도 얻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다 죽이고 불태워야 했으니 목숨을 걸고 싸워도 싸움의 대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쟁을 일상적으로 벌이던 시대, 하나님은 욕망 충족을 위한 싸움을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싸움을 했습니까? 용납할 수 없는 죄악, 도덕적 방탕함이나 지나치게 폭력적인 문화를 거절하고, 그것과 구별된 사랑과 희생과 배려의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요컨대 당시 문화적 배경 속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은 욕망의 충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적인 생활방식을 거절하고 사랑과 희생의 원리를 따르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욕망의 무한 충족을 목표로 살아가는 시대 풍속에 휩쓸리지 않고, 대신 도덕적으로 구별되는 사랑과 자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뜻은 명백합니다.
우리 시대 역시 얼마나 방탕합니까? 자기 욕망의 무한 충족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켜야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자기만족이나 자기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덕적인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싸움은 정결하고 도덕적인 삶에서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10월 1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과 마귀에 대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싸움에 대하여 오해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가끔 우리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땅밟기기도>처럼 영적인 싸움을 마귀와 어둠의 권세에 대항하는 주술적인 차원의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미 이루신 일입니다.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이 완성하신 일을 반복하기 보다는 예수님이 이루신 승리를 토대로 예수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깨끗하고 정결한 삶을 살면서 어둠의 권세에 매인 세상 안에 은혜의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도덕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구약성경을 읽는 분들이 자주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적을 아예 진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 있는 것을 다 죽이고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것은 아주 잔인한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대단히 잔혹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시 문화에 비추어 읽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되던 시대는 약탈이 만연한 약육강식의 시대였습니다. 약탈을 노리는 부족 간의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족 간의 전쟁을 통해서 약탈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횡재하는 셈이었습니다. 상대부족의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소와 양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다 탈취했습니다. 아이들은 노예로 삼고, 여자들을 끌어 와서 자기 부족의 자녀들을 더 많이 생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고, 승리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얻는 셈이었습니다. 전쟁이야말로 고대사회 욕망 충족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는 악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잔혹한 싸움을 일상적으로 벌이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워도 얻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다 죽이고 불태워야 했으니 목숨을 걸고 싸워도 싸움의 대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쟁을 일상적으로 벌이던 시대, 하나님은 욕망 충족을 위한 싸움을 할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싸움을 했습니까? 용납할 수 없는 죄악, 도덕적 방탕함이나 지나치게 폭력적인 문화를 거절하고, 그것과 구별된 사랑과 희생과 배려의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싸웠던 것입니다. 요컨대 당시 문화적 배경 속에서 보자면 이스라엘은 욕망의 충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적인 생활방식을 거절하고 사랑과 희생의 원리를 따르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욕망의 무한 충족을 목표로 살아가는 시대 풍속에 휩쓸리지 않고, 대신 도덕적으로 구별되는 사랑과 자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뜻은 명백합니다.
우리 시대 역시 얼마나 방탕합니까? 자기 욕망의 무한 충족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켜야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자기만족이나 자기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도덕적인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싸움은 정결하고 도덕적인 삶에서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10월 1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0
로그인 후 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