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랴와 우리야(박용태목사님)
2013.09.0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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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사랴와 우리야
박용태목사
성경은 과거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형편을 아주 잘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요즘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구약성경 역대하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최근 읽었던 본문에 아사랴와 우리야라고 하는 제사장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사랴는 웃시야 왕이 다스릴 때 제사장이었습니다. 웃시야는 무려 52년 동안이나 남유다를 다스리면서 부국강병정책을 잘 활용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력이 커지면서 웃시야가 교만해졌습니다. 자신이 성소에 들어가서 직접 하나님께 분향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제사장 아사랴가 용감한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왕을 따라 들어가서 왕을 책망했습니다. 왕이 직접 성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분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어기는 일이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이라고 외쳤습니다. 제사장의 책망을 받았던 웃시야가 화를 내었는데 그 순간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시는 줄 깨달은 웃시야가 황망하게 돌아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사장 아사랴는 왕이라 할지라도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때는 당당하게 책망하며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야는 아하스 왕 때 제사장이었습니다. 아하스는 온갖 잘못된 일을 일삼는 고약한 왕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굴복하면서 다메섹에 갔다가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 모양에 큰 감동을 받고 그것을 똑 같이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제사장 우리야는 왕이 돌아오기도 전에 왕이 명령한 제단을 다 만들어 놓고 왕이 돌아오자 말자 그 제단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인데 하나님보다 왕에게 충성하는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아하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심지어 성전 문을 닫고 성전 기구를 다 부수어 버리는 일조차 저질렀는데 어느 누구 ‘안 됩니다!’하면서 가로막고 나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점점 몰락해 가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사랴와 우리야는 똑같은 제사장인데 한 사람은 불의를 행하는 왕을 책망하며 가로막아 설 줄 알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왕이 아무리 악한 일을 할지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순종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제지를 받았던 웃시야는 그나마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시는 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고분고분하던 우리야 덕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던 아하스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그저 비탈길로 내리닫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여지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시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교만한 권력자들은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싶어 합니다. 부도덕한 권력자일수록 나쁜 짓을 더 많이 합니다. 물론 어떤 정책을 펴 나갈 때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옳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 뻔히 보이는 나쁜 짓을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지난 정부 때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 국가정보원 불법대선개입 문제로 청문회를 하고 있지만 이 외에도 4대강 사업이며 천안함 사건이며 더 밝히고 드러내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불의한 권력자들에게 고분고분한 우리야 같은 사람은 많지만 불의에 대항할 줄 아는 아사랴 같은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세상권력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8월 2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성경은 과거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형편을 아주 잘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요즘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구약성경 역대하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최근 읽었던 본문에 아사랴와 우리야라고 하는 제사장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아사랴는 웃시야 왕이 다스릴 때 제사장이었습니다. 웃시야는 무려 52년 동안이나 남유다를 다스리면서 부국강병정책을 잘 활용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력이 커지면서 웃시야가 교만해졌습니다. 자신이 성소에 들어가서 직접 하나님께 분향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제사장 아사랴가 용감한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왕을 따라 들어가서 왕을 책망했습니다. 왕이 직접 성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분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어기는 일이요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이라고 외쳤습니다. 제사장의 책망을 받았던 웃시야가 화를 내었는데 그 순간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시는 줄 깨달은 웃시야가 황망하게 돌아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사장 아사랴는 왕이라 할지라도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때는 당당하게 책망하며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야는 아하스 왕 때 제사장이었습니다. 아하스는 온갖 잘못된 일을 일삼는 고약한 왕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굴복하면서 다메섹에 갔다가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 모양에 큰 감동을 받고 그것을 똑 같이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제사장 우리야는 왕이 돌아오기도 전에 왕이 명령한 제단을 다 만들어 놓고 왕이 돌아오자 말자 그 제단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인데 하나님보다 왕에게 충성하는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아하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심지어 성전 문을 닫고 성전 기구를 다 부수어 버리는 일조차 저질렀는데 어느 누구 ‘안 됩니다!’하면서 가로막고 나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하스는 점점 몰락해 가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사랴와 우리야는 똑같은 제사장인데 한 사람은 불의를 행하는 왕을 책망하며 가로막아 설 줄 알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왕이 아무리 악한 일을 할지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순종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제지를 받았던 웃시야는 그나마 하나님이 자신을 징계하시는 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고분고분하던 우리야 덕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던 아하스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그저 비탈길로 내리닫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여지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 시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교만한 권력자들은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하고 싶어 합니다. 부도덕한 권력자일수록 나쁜 짓을 더 많이 합니다. 물론 어떤 정책을 펴 나갈 때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옳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 뻔히 보이는 나쁜 짓을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지난 정부 때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 국가정보원 불법대선개입 문제로 청문회를 하고 있지만 이 외에도 4대강 사업이며 천안함 사건이며 더 밝히고 드러내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불의한 권력자들에게 고분고분한 우리야 같은 사람은 많지만 불의에 대항할 줄 아는 아사랴 같은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세상권력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8월 2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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