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박용태목사님)
2013.06.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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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성경에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우상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백하게 금지하시는데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우상이 단순히 종교적인 상징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우상을 금지하는 이유는 우상이 그 시대 정치와 문화, 경제와 교육 등 삶과 사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코드였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바알신앙을 도입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우상 숭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바알로 상징되는 선진적인(?) 사회 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남유다의 아하스왕이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제단의 모형을 예루살렘에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컨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자신의 통치이념으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영향력 있던 주변 이방나라의 통치시스템을 도입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더욱 경쟁적이고 욕망충족을 위한 공격적인 몸부림과 계층 간 갈등이 가득한 무자비한 사회로 변해 버렸습니다.
우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 그것을 수천 년 전의 종교적인 풍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돌과 나무로 만든 신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 시대 우상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 학벌, 외모와 몸매 등 자기행복을 뒷받침해 준다고 믿는 그 무엇입니다. 고대사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우상을 가진 사람들은 은으로 만든 우상을 부러워하고, 은으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우상을 부러워했습니다. 더 멋있는 우상, 더 비싼 재료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더 행복해 질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자기 아버지 라반에게서 드라빔을 훔쳐 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자기 행복과 자기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상의 모양과 형태가 어떻든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밑바닥에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욕망을 속시원하게 충족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마치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눈앞에 뻔히 보고서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자기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내면에 있는 감사와 기쁨은 사라지고 부러움과 시기심이 찾아드는데 심하면 그것이 분노와 상처로 자라납니다. 우상은 결국 우리 내면의 평안을 빼앗아가고 서로 경쟁하고 다투게 하면서 우리를 마귀의 자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상은 결코 우리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자기 행복을 무한정 추구하는 우리 시대가 얼마나 파괴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 생각해 보세요.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경쟁에 내몰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기쁨과 행복을 잃어 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우상은 가짜입니다. 우상은 그것을 섬기는 사람을 파괴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하나님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6월 4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성경에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우상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백하게 금지하시는데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우상이 단순히 종교적인 상징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우상을 금지하는 이유는 우상이 그 시대 정치와 문화, 경제와 교육 등 삶과 사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코드였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바알신앙을 도입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우상 숭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바알로 상징되는 선진적인(?) 사회 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남유다의 아하스왕이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제단의 모형을 예루살렘에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컨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자신의 통치이념으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영향력 있던 주변 이방나라의 통치시스템을 도입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더욱 경쟁적이고 욕망충족을 위한 공격적인 몸부림과 계층 간 갈등이 가득한 무자비한 사회로 변해 버렸습니다.
우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 그것을 수천 년 전의 종교적인 풍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돌과 나무로 만든 신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 시대 우상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 학벌, 외모와 몸매 등 자기행복을 뒷받침해 준다고 믿는 그 무엇입니다. 고대사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우상을 가진 사람들은 은으로 만든 우상을 부러워하고, 은으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우상을 부러워했습니다. 더 멋있는 우상, 더 비싼 재료로 만든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더 행복해 질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자기 아버지 라반에게서 드라빔을 훔쳐 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자기 행복과 자기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상의 모양과 형태가 어떻든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밑바닥에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욕망을 속시원하게 충족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마치 신기루와 같은 것이어서 눈앞에 뻔히 보고서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자기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내면에 있는 감사와 기쁨은 사라지고 부러움과 시기심이 찾아드는데 심하면 그것이 분노와 상처로 자라납니다. 우상은 결국 우리 내면의 평안을 빼앗아가고 서로 경쟁하고 다투게 하면서 우리를 마귀의 자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상은 결코 우리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자기 행복을 무한정 추구하는 우리 시대가 얼마나 파괴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 생각해 보세요.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경쟁에 내몰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기쁨과 행복을 잃어 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우상은 가짜입니다. 우상은 그것을 섬기는 사람을 파괴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만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하나님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6월 4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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