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내면의 갈등을 극복해야 합니다(박용태목사님)

본문

내면의 갈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만났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당시 사람들은 남들이 당하지 않는 특별한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은 당연히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이 날 때부터 맹인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이 밀려 올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당하지 않는 고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혹은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생각하며 원인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우리 영혼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리어 고난과 슬픔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경험할 것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그 맹인을 고치시는 방법이 대단히 이상했습니다. 안수하신 것도 아니요 말씀으로 고치신 것도 아닙니다.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맹인이라고 하지만 침으로 이겨 만든 진흙을 눈에 바르는 것은 이 사람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꼴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맹인에게 어디까지 가서 씻고 오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습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 주려는 현대사회에서도 시각 장애인이 움직이는 것은 힘든 일인진대 2000년 전 언덕 위에 서 있었던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실로암 못까지 가서 씻고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로암 못까지 가는 동안 이 맹인의 마음에는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났을 것입니다. 과연 눈을 뜰 수 있을 것인지, 내가 그저 남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번민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 맹인은 예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볼 때 이 맹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우연한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예수님이 이 맹인의 삶에 개입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고난이나 우리가 경험하는 은혜는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난은 번민할 틈도 없이 우리 인생을 덮칩니다. 반면에 회복의 은혜는 그것을 누리기까지 갈등과 고민과 결단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이 맹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로암 못까지 가는 데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실로암 못까지 가는 동안에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맹인의 눈은 점점 뜨여 진 것이 아닙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상태에서 온갖 의구심을 품고서라도 실로암 못까지 가서 씻었을 때 갑자기 눈이 밝아졌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과정에서 번민하고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고민하고 갈등할지라도 결단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갈등과 번민을 이겨내는 사람이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월 2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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