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사마리아로 향하는 마음(이구집사)

본문

사마리아로 향하는 마음
이 구 집사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지방은 저주 받은 곳이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 없는 그들 조상들의 잘못으로 이방인보다도 더한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 오죽했으면 유대인들은 여행의 지름길이었음에도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지 않았고,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어떤 유대인(예수님)이 자신에게 말 거는 것조차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분명히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 한낮의 더위에 이웃의 눈을 피해 우물가로 물을 길러 나왔던 가련한 여인을 기다리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여인의 마음이 쉽게 열리도록 제자들 모두를 잠시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홀로 여인을 기다리신 배려에서도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기 원하셨다. 이웃의 눈을 피해 물 한 동이를 나르는 고단한 여인에게 그보다 더 반갑고 중요한 소식이 또 있을까.

매해 비전트립의 준비작업에는 동참했지만 막상 오랜만에 직접 참여하려 하니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다. 해외로 나가는 일은 횟수가 반복되어도 매번 설레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결정 직전까지도 맘을 쉽게 정하지 못했다. 여러면에서 누군가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얼마 전에도 출국했던 데다 그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과 또 다시 매장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또 인도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힘든 여행 환경은 또 어떠한가. 하지만 희망자들의 목록을 가득 채우는 어린 학생들의 이름과 나의 권유로 비전트립을 희망한 지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권유할 때는 그렇게 필요성을 역설하고 헌신을 강조했으니 더욱 그럴 일이다.
그런데 막상 동참을 결정하고 2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치면서 인도에 대해 공부해가며, 또 마침 선교를 주제로 진행되었던 느헤미야 포럼의 학습을 경험하며 나의 고민과 결정의 동기가 얼마나 지엽적이고 인간적이었는가를 깨달았다. 일생을 드려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활동, 즉 신앙 활동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소한 행동에서도 선교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힌두권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알게 되니 지금껏 주로 생각해오던 이슬람권 못지않은 선교적 도전과 열매가 절실함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인도를 가슴에 품게 하신 것이다.

멸시 받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시면서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련한 한 여인을 품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성탄 준비로 인한 과로로 쓰러지셨던 인도의 송광호 선교사님과 열병으로 고생하셨던 임정선선교사님을 생각한다.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만 생각하는 나의 모습, 막상 있는 자리를 뜨려 하는 결정에는 주저할 여러 이유를 나열해가는 이기적인 나의 마음이 부끄럽게 오버랩된다.
오랜 기간 준비하고 빠짐없이 준비하다 해도 영원한 생수가 필요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또한 만났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마음 없이 나아가면 우리의 일정은 요란한 빈수레의 행차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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