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으세요(박용태목사님)
2013.07.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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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끌어안으세요.
박용태목사
몇 해 전 “프리 허그”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Free Hug”라고 쓴 피켓을 들고 기다리다가, 포옹을 청해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안아주는 행동입니다. 어느 누구의 품에도 제대로 안겨보지 못할 정도로 외로운 현대인을 따뜻한 가슴으로 만져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꼭 끌어안아 주는 사람의 품에서 눈물지으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프리 허그”운동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누군가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이사야서 46장 3절과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안아주시고, 우리를 업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혼자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기가 버겁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업어 주시는 분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생각지 못했던 사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거나 병에 들 수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면, 세상에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를 안아주시고 업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요즘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신약성경 에베소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를 품에 끌어안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연약하고 허물이 많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밀어내지 않으시고 내몰라라 하지 않으십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고쳐 주시고 회복해 주십니다. 예수님 품에서는 언제나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것보다 더 귀한 은혜가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끌어안아 주시는 주님은 우리에게도 서로를 끌어안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열매는 무관심이요 분열과 갈등과 미움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서로를 끌어안습니다. 설령 깨어진 관계라도 서로를 화해하게 하고 하나 되게 만들어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별 짓는데 익숙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담을 세우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담을 허물고 서로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며 특히 연약한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꼭 끌어안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이 가정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강한 자가 연약한 사람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선배가 후배를,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믿음 어린 성도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남한이 북한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도시교회가 농촌교회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삶을 새롭게 만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7월 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몇 해 전 “프리 허그”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Free Hug”라고 쓴 피켓을 들고 기다리다가, 포옹을 청해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안아주는 행동입니다. 어느 누구의 품에도 제대로 안겨보지 못할 정도로 외로운 현대인을 따뜻한 가슴으로 만져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꼭 끌어안아 주는 사람의 품에서 눈물지으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프리 허그”운동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누군가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이사야서 46장 3절과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안아주시고, 우리를 업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혼자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기가 버겁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업어 주시는 분인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생각지 못했던 사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나거나 병에 들 수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면, 세상에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를 안아주시고 업어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요즘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신약성경 에베소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를 품에 끌어안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연약하고 허물이 많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밀어내지 않으시고 내몰라라 하지 않으십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고쳐 주시고 회복해 주십니다. 예수님 품에서는 언제나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것보다 더 귀한 은혜가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끌어안아 주시는 주님은 우리에게도 서로를 끌어안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열매는 무관심이요 분열과 갈등과 미움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서로를 끌어안습니다. 설령 깨어진 관계라도 서로를 화해하게 하고 하나 되게 만들어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별 짓는데 익숙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담을 세우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담을 허물고 서로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며 특히 연약한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꼭 끌어안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이 가정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강한 자가 연약한 사람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선배가 후배를, 믿음이 성숙한 사람이 믿음 어린 성도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남한이 북한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도시교회가 농촌교회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아 주시기 바랍니다. 삶을 새롭게 만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7월 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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