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믿음이란 이해할 수 없어도 신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박용태목사님)

본문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예방주사를 맞히려고 보건소에 데려 가면 각기 행동이 달랐습니다. 조금 더 큰 아이는 비록 겁내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냥 조용히 들어가서 맞고 나왔습니다. 주사를 맞고 난 후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씩 닦으면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어린 아이는 예방주사 맞히는 일이 고역이었습니다. 보건소 입구에서부터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떼를 쓰기도 하고 심지어 대기실 의자를 붙들고 버티면서까지 주사를 맞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그렇게 울고불고 하는 아이를 붙들고 어떡해서든지 예방주사를 맞히려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건강과 장래를 위해 그렇게 싫어하는 주사를 맞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실 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장은 아프고 괴로운 일인데 지나고 보면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복되게 만드시는데 필수적인 과정인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당장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을 때는,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토록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내버려 두시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믿음이란 우리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신뢰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인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헤아리기는 불가능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쩌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짓이 아니겠습니까?
구약성경 이사야 55장 8절과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요셉을 생각해 보세요.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생활을 잘 했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이 갇힌 곳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은 성추행범이거나 강간미수범인데, 더욱이 노예였는데, 왜 죽여 버리지 않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넣었을까요? 요셉은 왕의 죄수, 귀족들과 당대의 정치범들을 수종 들면서 애굽을 배웠던 것입니다. 요컨대 요셉이 갇혔던 감옥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준비시켰던 학교였던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요셉은 상처받고 배신을 당하고 점점 몰락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은 요셉을 아브라함의 후손뿐만 아니라 애굽을 먹여 살릴 큰 일꾼으로 기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신 분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 우리가 모르는 영역까지 헤아리시면서 우리 인생의 걸음을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에 맞닥뜨릴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줄 알아야 합니다. (6월 18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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