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유익한 자(최낙원장로)
2013.01.0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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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교회에 유익한 자
최낙원장로
본문:빌레몬서 1:4-7
바울서신의 대부분은 엄격한 교리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빌레몬서는 바울의 신학자적인 모습이 감추어진 대신, 인간 바울의 한없이 자비로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빌레몬서는 고대 로마시대의 노예제도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주요 인물들은 바울,빌레몬,오네시모 입니다. 이 삼자는 신분이 다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한 공동체,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빌레몬 1:19을 보면 빌레몬은 바울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재물의 손상을 입히고 로마로 도망간 후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였습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법으로 용서될 수 없는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용서해 줄것을 부탁하고 이제는 노예로 보지말고 “사랑 받는 형제”(16절)로 대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의 중심 주제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오네시모가 전에는 바울과 빌레몬에게 무익한 자였지만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11절) 그러므로 육체로 대하지 말고 형제로 대해달라고 말합니다. 사실 오네시모란 말 뜻도 “유익한,유용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은 무수한 신분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거의 엄격한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집안,학력,직업,물질에 따라 신분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여러 신분 계층에 속한 자들이 몰려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신분을 뛰어 넘고 진정한 의미의 형제, 자매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교회의 큰 과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레몬서의 앞서 언급한 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관계는 신분의 차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신분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 형제나 자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분관계의 재해석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당시의 엄격한 노예제도에 비추어 볼 때 용서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그가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자”임을 상기시키면서 용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사회의 신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신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신분에 비추어볼 때 오네시모나 바울이나 빌레몬이나 동일한 신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는 사회적 신분의 노예로서 육신의 상전인 빌레몬을 전보다 더욱 열심히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뛰어넘은 자들인 것입니다. 아마 오네시모는 용서함을 받은 후에는 이전보다 더욱, 전심으로 육신의 주인인 빌레몬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빌레몬 역시 교회에 유익한 자였습니다. 4절에서 7절까지 보면 그가 얼마나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쳤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 과 “믿음”으로, 그리고 그의 “믿음의 교제”가 성도들에게 “선”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도록 만들었으며 “평안”과 “많은 기쁨의 위로”를 성도들에게 끼쳤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있으면 안 되는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꼭 있어야 할 사람, 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진정 어느 부류에 속하는 자인지를 살펴보고, 교회에 꼭 필요한, 유익한 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최낙원장로
본문:빌레몬서 1:4-7
바울서신의 대부분은 엄격한 교리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빌레몬서는 바울의 신학자적인 모습이 감추어진 대신, 인간 바울의 한없이 자비로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빌레몬서는 고대 로마시대의 노예제도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고 있는 주요 인물들은 바울,빌레몬,오네시모 입니다. 이 삼자는 신분이 다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한 공동체,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빌레몬 1:19을 보면 빌레몬은 바울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집에서 교회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재물의 손상을 입히고 로마로 도망간 후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자였습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법으로 용서될 수 없는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용서해 줄것을 부탁하고 이제는 노예로 보지말고 “사랑 받는 형제”(16절)로 대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의 중심 주제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오네시모가 전에는 바울과 빌레몬에게 무익한 자였지만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11절) 그러므로 육체로 대하지 말고 형제로 대해달라고 말합니다. 사실 오네시모란 말 뜻도 “유익한,유용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은 무수한 신분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거의 엄격한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집안,학력,직업,물질에 따라 신분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여러 신분 계층에 속한 자들이 몰려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신분을 뛰어 넘고 진정한 의미의 형제, 자매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교회의 큰 과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레몬서의 앞서 언급한 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관계는 신분의 차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신분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 형제나 자매가 그리스도 안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되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분관계의 재해석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당시의 엄격한 노예제도에 비추어 볼 때 용서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제 그가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자”임을 상기시키면서 용서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사회의 신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신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신분에 비추어볼 때 오네시모나 바울이나 빌레몬이나 동일한 신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는 사회적 신분의 노예로서 육신의 상전인 빌레몬을 전보다 더욱 열심히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뛰어넘은 자들인 것입니다. 아마 오네시모는 용서함을 받은 후에는 이전보다 더욱, 전심으로 육신의 주인인 빌레몬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빌레몬 역시 교회에 유익한 자였습니다. 4절에서 7절까지 보면 그가 얼마나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쳤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 대한 “사랑” 과 “믿음”으로, 그리고 그의 “믿음의 교제”가 성도들에게 “선”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도록 만들었으며 “평안”과 “많은 기쁨의 위로”를 성도들에게 끼쳤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있으면 안 되는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꼭 있어야 할 사람, 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진정 어느 부류에 속하는 자인지를 살펴보고, 교회에 꼭 필요한, 유익한 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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