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으세요(박용태목사님)
2013.01.0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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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수 믿으세요.
박용태목사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오늘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일- 성육신(成肉身)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성탄절에는 예수님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말 들뜬 분위기와 함께 요란하고 분주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을 넘어서 허영심과 방탕함에 빠져 드는 일조차 비일비재한 듯합니다. 사회의 전체적인 풍토가 그처럼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고요하고 잠잠한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을 보면 화려하고 매력적이지만 방탕함으로 인해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상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천사가 요한을 광야로 데려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연약하고 흠이 많아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요한을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 갔습니다. 광야나 산은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장소입니다. 분주함에 떠밀려 다니는 현실 속에서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도 알기가 어렵고 또 정말 바라보아야 할 인생의 소망과 목표도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분주한 일상과 구별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 고요하고 잠잠한 자리에 서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를 외치는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결국 온 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이 작은 일입니까? 물론 성탄절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성육신이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역사 안에서 분명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쳤다는 역사적 사실과 마찬가지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역사를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것처럼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은 인류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건져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막10:4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묘사되는데 어린양을 제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성탄절에 인류 역사 가운데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이요 신비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해 보세요. 무기력하게 또는 그저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이천년 전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과 가정에도 찾아 오셔서 하나님 주시는 큰 평화와 구원의 기쁨을 허락해 주시기만 기도합니다.
(12월 25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오늘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일- 성육신(成肉身)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성탄절에는 예수님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말 들뜬 분위기와 함께 요란하고 분주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을 넘어서 허영심과 방탕함에 빠져 드는 일조차 비일비재한 듯합니다. 사회의 전체적인 풍토가 그처럼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고요하고 잠잠한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을 보면 화려하고 매력적이지만 방탕함으로 인해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상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천사가 요한을 광야로 데려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연약하고 흠이 많아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요한을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 갔습니다. 광야나 산은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장소입니다. 분주함에 떠밀려 다니는 현실 속에서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도 알기가 어렵고 또 정말 바라보아야 할 인생의 소망과 목표도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분주한 일상과 구별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 고요하고 잠잠한 자리에 서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를 외치는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며 결국 온 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이 작은 일입니까? 물론 성탄절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성육신이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역사 안에서 분명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쳤다는 역사적 사실과 마찬가지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역사를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것처럼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은 인류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건져 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막10:4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묘사되는데 어린양을 제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성탄절에 인류 역사 가운데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이요 신비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해 보세요. 무기력하게 또는 그저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이천년 전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과 가정에도 찾아 오셔서 하나님 주시는 큰 평화와 구원의 기쁨을 허락해 주시기만 기도합니다.
(12월 25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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