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염치를 알아야 합니다(박용태목사님)

본문

염치를 알아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옛 어른들은 사람이 염치(廉恥)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염치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는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끄러운 줄 알고, 또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부끄러운 줄 알고 미안해하는 것을 염치를 안다고 합니다. 염치가 없다는 말은 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 염치없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을 일러 파렴치(破廉恥)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누구를 파렴치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당사자에 대하여는 대단히 심한 모욕입니다.
그러나 파렴치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세상에서 모욕만 당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좋은 대접을 받으며, 남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염치를 모르고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을 때,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지만, 하늘이 그런 못된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언제나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염치를 생각하고 천벌을 염두에 두고 살면 그나마 순박함과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해야 한다거나,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힘껏 도와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굳이 예수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밝은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보편적인 윤리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뒤죽박죽 엉켜진 세상에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이나 명예와 권력에 눈이 멀어서 사람이 차마 해서는 안될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작은 공동체적 관계로 엮어진 단순한 사회, 늘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염치를 말하기가 보다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가 지나치게 복잡해지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직접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악한 짓을 하면서도 내몰라라 하기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 자체가 지나치게 세속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더 이상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벌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만족, 자기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과 3절이 지적하는 대로 하자면 “세상 풍조와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악한 마귀의 지배 아래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옳고 그른 것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억울한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악한 짓을 한 사람을 반드시 책망하십니다. 그러므로 염치를 알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바른 삶을 사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굳어진 마음을 가진 우리 세대보다 염치를 알고 살았던 옛 어른들이 하나님께 훨씬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염치를 알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9월 24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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