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2014.09.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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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일반적으로 주일마다 예배당에 가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표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그러나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며 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주변에 있는 고약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곱고 예쁜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씀씀이가 거칠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른 채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속상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고약한 사람들 때문에 생겨나는 더 큰 어려움은 바로 양심의 가책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기도하고, 그래도 사랑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잘해 줘야지’ 결심은 하지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꼴을 보면 화가 불쑥불쑥 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양심에 가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하나 품지 못하면서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책감이 일어납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더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려고 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우리 속에 있는 본래적인 성품이 아닙니다. 물론 본성적으로 남들보다 좀 더 유순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 특별히 마음아파 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놀부 심보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남들을 돌아보며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요일4:7).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배워서 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모욕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이 품어 주신 사랑입니다. 먼저 찾아 오셔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이요 아무리 연약하고 허물 많은 영혼이라도 품고 끌어안아 주신 넉넉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이웃사랑 형제 사랑의 원천이 됩니다. 고약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하고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힘입어 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월 9(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일반적으로 주일마다 예배당에 가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표지는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그러나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며 살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주변에 있는 고약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곱고 예쁜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씀씀이가 거칠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른 채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속상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고약한 사람들 때문에 생겨나는 더 큰 어려움은 바로 양심의 가책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기도하고, 그래도 사랑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잘해 줘야지’ 결심은 하지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꼴을 보면 화가 불쑥불쑥 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양심에 가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사람하나 품지 못하면서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책감이 일어납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더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려고 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이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우리 속에 있는 본래적인 성품이 아닙니다. 물론 본성적으로 남들보다 좀 더 유순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면 특별히 마음아파 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놀부 심보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남들을 돌아보며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요일4:7).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배워서 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배척을 받고 모욕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이 품어 주신 사랑입니다. 먼저 찾아 오셔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이요 아무리 연약하고 허물 많은 영혼이라도 품고 끌어안아 주신 넉넉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이웃사랑 형제 사랑의 원천이 됩니다. 고약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하고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힘입어 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월 9(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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