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슬픔과 어려움이 남기는 것들 (욥 13:20~14:22) 이구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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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어려움이 남기는 것들 (욥 13:20~14:22)
- 이 구 집사

생활 가운데 때때로 만나는 어려움들이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상황들의 지배를 받는다. 소소한 일들이야 잠깐 사이 지나갈 수도 있지만 여간해서는 회복되기 어려움들도 있다. 자신의 수단과 능력, 주변의 도움 등으로 문제를 풀어가며 그 상황들을 헤쳐가곤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나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나며 절망에 빠질 수도 있겠다.
그런 상황은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겪는 것이므로 우리 모두에겐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함께 마음 아파하며 같이 근심하는가 보다. 어렸을 적 성경을 읽거나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를 접할 때, 나는 욥이 무척 불쌍했다. 세상 물정을 통 모르는 어린 마음에도 그랬으니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 지금에야 말할 것도 없겠다. 여전히 욥기를 읽을 때마다 욥이 불쌍하고, 하나님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 답답함으로 인해서인지 성경 통독에 있어 욥기는 지금도 여전히 난관이다.
13:20부터 시작되는 욥의 기도는 읽는 이의 탄식을 더하게 한다.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은 옳지만,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는 친구들의 계속 되는 말은 욥을 완전히 코너로 모는데, 욥기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욥은 이미 그로키 상태가 되고 만다.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들이 아닌 하나님께 부르짖기로 하며 하는 기도, 그 내용이 참 가슴 아프다.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14:14)”라며 신앙을 고백하긴 하지만, 간구의 밑바닥에서 욥은 징벌과도 같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성경 인물 열전의 내용으로 보자면 퍽이나 당황스런 내용이지만, 인간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외침이라 생각한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외침의 시점에서 욥의 신앙과 인성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찢어질 듯한 아픔을 짐짓 숨기지도 않고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믿고 따랐던 하나님은 이러실 분이 아니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데, 도리어 그것이 마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 같아도 그렇게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더 심한 말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욥은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놓고는 있지만, 하나님 존재를 부인하거나 혹은 엉터리 신과 다름없다고 저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옴짝달싹할 수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친구들에게 저주를 퍼붓지도 않는다. 신앙의 위인은 모두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지, 특별히 만들어지거나 수련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누구나 신앙의 위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결단의 시점에서 어떤 선을 넘어가고야 말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이 욥을 칭송하셨던 것이 괜한 내용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고통을 겪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헤아릴 수 있다. 욥기의 결말에서 욥은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받고 행복을 누리게 된다. 아마도 욥은 세상 사람들에게 여러 축복의 증거 때문에 부러움을 얻었겠지만, 어려움으로 인해 더욱 어려운 이들을 챙기고 그들과 함께 하는 성숙하고 깊어진 인성과 신앙으로 인해 칭송받았을 것이다. 슬픔과 위로가 사람에게 남기는 것들이 바로 이와 같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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