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 남의 일이 아닙니다(박용태목사)
2014.07.2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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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통 – 남의 일이 아닙니다.
박용태목사
최근 우리 성도들과 함께 욥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데 상당히 어렵고 힘이 듭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고난과 고통은 누구나 당할 수 있지만, 고통의 원인이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 앞에 가져와서 기도하면 해결된다. 믿음만 있으면 해결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고난과 고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탓이요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기도를 믿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대단히 잔인한 일입니다.
욥기는 고난/고통의 문제를 상당히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논리와 주장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중에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생각, 그 모든 답답함, 그 모든 슬픔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의 긴 토론과 논쟁은, 고통에 휩싸인 사람의 심정을 하나님이 다 헤아리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죄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든 고난과 고통이 다 죄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만 해도 그렇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욥1:1). 그런데도 말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는 누구든지 고난과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조차 여러 가지 고난과 고통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고난과 고통을 남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고 정치권의 무관심과 불성실한 태도에 실망한 유가족들이 특별법제정을 위해 농성과 단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이 자기 눈앞에 밀려닥치기 전에는 그 고통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떻게든 요령껏 행동하면 어려운 꼴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 더욱이 정의롭지 못한 무질서한 사회라면, 고난과 고통이 점점 더 무서운 모습으로 밀려닥칠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던 사람들은 고난이 밀려오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질문합니다. 심지어 평소에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던 사람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따지려 듭니다. 그러나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언제나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무질서와 불의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은 평소에 세상의 불의에 무관심하고,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데 헌신하지 않은 데 대한 댓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과 슬픔을 남의 문제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이 연약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손 내밀어 주시듯이, 고통당하는 사람의 눈에서 눈물 닦아 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7월 15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최근 우리 성도들과 함께 욥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데 상당히 어렵고 힘이 듭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고난과 고통은 누구나 당할 수 있지만, 고통의 원인이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 앞에 가져와서 기도하면 해결된다. 믿음만 있으면 해결된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고난과 고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탓이요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기도를 믿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대단히 잔인한 일입니다.
욥기는 고난/고통의 문제를 상당히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논리와 주장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중에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생각, 그 모든 답답함, 그 모든 슬픔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욥기의 긴 토론과 논쟁은, 고통에 휩싸인 사람의 심정을 하나님이 다 헤아리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죄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든 고난과 고통이 다 죄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욥만 해도 그렇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욥1:1). 그런데도 말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는 누구든지 고난과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조차 여러 가지 고난과 고통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면 고난과 고통을 남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고 정치권의 무관심과 불성실한 태도에 실망한 유가족들이 특별법제정을 위해 농성과 단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이 자기 눈앞에 밀려닥치기 전에는 그 고통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떻게든 요령껏 행동하면 어려운 꼴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 더욱이 정의롭지 못한 무질서한 사회라면, 고난과 고통이 점점 더 무서운 모습으로 밀려닥칠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던 사람들은 고난이 밀려오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질문합니다. 심지어 평소에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던 사람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따지려 듭니다. 그러나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언제나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특히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무질서와 불의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면, 그것은 평소에 세상의 불의에 무관심하고,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데 헌신하지 않은 데 대한 댓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과 슬픔을 남의 문제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이 연약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손 내밀어 주시듯이, 고통당하는 사람의 눈에서 눈물 닦아 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7월 15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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