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과 불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담임목사님)
2014.06.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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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죄악과 불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박용태목사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을 우리 민족을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한 총리후보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비난 여론이 일자 ‘교회 안에서 신앙적 언어를 사용한 강의’라고 해명했습니다. 교계 일각에서는 그 강의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기독교인의 성숙한 역사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옹호하는 분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주장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악한 사람들이 있고 불의한 사건들도 자주 일어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과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전쟁을 치른 일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요, 악이며 불의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와 불의조차 이용하셔서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의한 사건 자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과 도덕적 불의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죄악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의와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건이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총리후보의 문제 발언이 담긴 강의 전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민족이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니 한 때 부강했던 유럽이나 미국이 지금은 퇴폐에 빠져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을 거울삼아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자는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자면 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말인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부강함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경제적 부강함 자체를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 풍성하고 부강했던 애굽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척박한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셨을까요? 물질적 부강함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면서 약육강식의 경쟁과 다툼을 무제한 허용하는 바알문화와 타협하지 말라고 그토록 강하게 촉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강함 자체를 무조건 축복으로 여긴다면 성경의 교훈과 천박한 자본주의적 욕망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부강함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는 경제적 이익과 돈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이 얼마나 극심한지 얼마 전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세월호는 돈과 이익에 눈먼 기업과 사이비 종교, 행정기관까지 깊숙하게 얽혀 있는 부정부패의 사슬에 걸려 침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능한 정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단 한 사람도 구출해 내지 못했습니다.
부강함을 칭송하는 것은 성경적 교훈이 아니라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강의를 하고자 했다면 우리 사회가 돈과 부강함을 추구하며 살아오는 동안 잊어버린 공의와 정의에 대한 감각, 무한경쟁 와중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어야 할 것입니다. 총리후보가 친일파 윤치호, 종신집권을 꿈꾸던 독재자 이승만 등을 예로 들고, 미국 일본 등의 긍정적 역할만 부각시켰는데, 그것은 총리후보가 부강함을 좋아하지만 성경적 공의와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분이다 보니 자연스레 드러난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총리후보의 생각는 바람직하지 못한 승리주의요, 번영신학의 아류일 뿐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습니다. (6월 17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을 우리 민족을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한 총리후보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비난 여론이 일자 ‘교회 안에서 신앙적 언어를 사용한 강의’라고 해명했습니다. 교계 일각에서는 그 강의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기독교인의 성숙한 역사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옹호하는 분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주장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악한 사람들이 있고 불의한 사건들도 자주 일어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과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전쟁을 치른 일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요, 악이며 불의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와 불의조차 이용하셔서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의한 사건 자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과 도덕적 불의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죄악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의와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건이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총리후보의 문제 발언이 담긴 강의 전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민족이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셔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니 한 때 부강했던 유럽이나 미국이 지금은 퇴폐에 빠져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을 거울삼아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자는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자면 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말인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부강함 자체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경제적 부강함 자체를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 풍성하고 부강했던 애굽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척박한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셨을까요? 물질적 부강함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면서 약육강식의 경쟁과 다툼을 무제한 허용하는 바알문화와 타협하지 말라고 그토록 강하게 촉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강함 자체를 무조건 축복으로 여긴다면 성경의 교훈과 천박한 자본주의적 욕망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부강함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는 경제적 이익과 돈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이 얼마나 극심한지 얼마 전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세월호는 돈과 이익에 눈먼 기업과 사이비 종교, 행정기관까지 깊숙하게 얽혀 있는 부정부패의 사슬에 걸려 침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능한 정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단 한 사람도 구출해 내지 못했습니다.
부강함을 칭송하는 것은 성경적 교훈이 아니라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강의를 하고자 했다면 우리 사회가 돈과 부강함을 추구하며 살아오는 동안 잊어버린 공의와 정의에 대한 감각, 무한경쟁 와중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어야 할 것입니다. 총리후보가 친일파 윤치호, 종신집권을 꿈꾸던 독재자 이승만 등을 예로 들고, 미국 일본 등의 긍정적 역할만 부각시켰는데, 그것은 총리후보가 부강함을 좋아하지만 성경적 공의와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분이다 보니 자연스레 드러난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총리후보의 생각는 바람직하지 못한 승리주의요, 번영신학의 아류일 뿐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습니다. (6월 17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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