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빚진 자’의식(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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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자’의식
박용태 목사
요즘 우리 성도들과 함께 로마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가 하면,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이방인에게 빚을 졌습니까?
본래 바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이고, 교회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오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고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을 하나님이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일꾼이었습니다(행9:15).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바울은 언제나 자신이 이방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부르심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덕분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바울은 비록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방인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복이라고 생각했고, 감사함으로 감당해 내었습니다. 이방인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빚 진자’ 라는 표현은 사도바울의 독특한 사명의식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바울의 이런 소명의식을 좀 배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빚을 지고 있고 아내는 남편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빚을 지고 있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배우자 덕분에 받아 누리는 은혜가 얼마나 많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자녀들 덕분에 누리는 기쁨과 행복이 얼마나 많습니까? 덕분에 누리는 은혜가 너무 많기 때문에 빚을 힘껏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학생이 없다면 어떻게 선생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학생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분들은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덕분에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높은 지위에 올라 있는 사람들도 이처럼 ‘빚 진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얼마나 겸손하고 애절하게 부탁하는지 모릅니다. 표를 얻어서 당선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권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권자 덕분에 그런 신분을 얻게 되었으니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투표해서 권력을 맡겨 준 것은 그 권세를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위세나 부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섬기라고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선거기간에는 겸손하다가 당선되고 나면 위세나 부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최근 세월호 사건에서도, 국민들에게 빚을 갚아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큰소리치면서 온갖 못된 짓을 일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빚을 지고도 갚지 않거나 떼먹으려 하는 사람은 결코 가만두어서는 안됩니다. 혼을 내주고 빚을 잘 갚을만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더 낫습니다. ‘빚 진자’의식 –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사명을 감당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5월 3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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