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움을 극복하는 법(담임목사님)
2014.05.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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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서러움을 극복하는 법
박용태목사
살다보면 서럽고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허무감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그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불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적장이 귀순해 왔기 때문에 불레셋왕이 받아주었지만 신하들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위기에 처하자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면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윗이 시편 34편에 기록되어 있는 찬송(기도)을 불렀는데, 6절에 보면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곤고한 자’란 말은 비참한 처지에 떨어져 버린 가련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때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던 사람이 조국에서 내쫓겨 살 곳을 찾지 못해 자신이 앞장서서 싸웠던 적국으로 도망을 간데다, 그곳에서조차 살아남기 위해 미친 사람 행세를 해야만 했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서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너무 슬프고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서럽고 답답할 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부르짖어 기도했던 다윗은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은 얼굴이 빛나고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시 34:5). 결국 위기를 잘 넘기고 빠져 나왔습니다.
서럽고 비참한 처지에서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혹 자신의 삶을 이토록 무너지게 만들어 버린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에 매어 있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그토록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것은 사울왕 때문이었지만 다윗은 사울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시편 34편을 묵상하면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그토록 비참한 처지에서 기도하면서 구원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는 단순히 ‘비참한 처지에 빠지게 되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다윗은 ‘하나님은 악한 자를 흔적이라도 지워버리려는 분이다(시34:16)’,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다(시34:21)’, 그러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자(시34:14)’,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시34:11)’이라고 외칩니다.
마침내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왕이 되었습니다(삼하8:15). 비참하고 서러운 처지에 빠졌던 개인적 경험을 발판으로 해서 다윗은 이스라엘 중에 다시는 그런 비참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 제도와 조직을 정비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비참하고 서러운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비참하고 억울한 사람을 감싸고 위로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비참하고 서러운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을 대항하시면서 흔적조차 없애 버리려고 하시는 하나님 편에 서서 세상의 불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무너져 버린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설움과 고통을 치유하시고 싸매어 주시기만 빕니다.(4월 2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살다보면 서럽고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허무감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그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불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적장이 귀순해 왔기 때문에 불레셋왕이 받아주었지만 신하들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반대하는 바람에, 위기에 처하자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면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윗이 시편 34편에 기록되어 있는 찬송(기도)을 불렀는데, 6절에 보면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곤고한 자’란 말은 비참한 처지에 떨어져 버린 가련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때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던 사람이 조국에서 내쫓겨 살 곳을 찾지 못해 자신이 앞장서서 싸웠던 적국으로 도망을 간데다, 그곳에서조차 살아남기 위해 미친 사람 행세를 해야만 했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서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너무 슬프고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서럽고 답답할 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부르짖어 기도했던 다윗은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은 얼굴이 빛나고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시 34:5). 결국 위기를 잘 넘기고 빠져 나왔습니다.
서럽고 비참한 처지에서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혹 자신의 삶을 이토록 무너지게 만들어 버린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에 매어 있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그토록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것은 사울왕 때문이었지만 다윗은 사울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시편 34편을 묵상하면서 주목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그토록 비참한 처지에서 기도하면서 구원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는 단순히 ‘비참한 처지에 빠지게 되면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다윗은 ‘하나님은 악한 자를 흔적이라도 지워버리려는 분이다(시34:16)’,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다(시34:21)’, 그러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자(시34:14)’,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시34:11)’이라고 외칩니다.
마침내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왕이 되었습니다(삼하8:15). 비참하고 서러운 처지에 빠졌던 개인적 경험을 발판으로 해서 다윗은 이스라엘 중에 다시는 그런 비참하고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 제도와 조직을 정비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비참하고 서러운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비참하고 억울한 사람을 감싸고 위로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비참하고 서러운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을 대항하시면서 흔적조차 없애 버리려고 하시는 하나님 편에 서서 세상의 불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무너져 버린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설움과 고통을 치유하시고 싸매어 주시기만 빕니다.(4월 2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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