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외로우십니까?(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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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십니까?
박용태목사
이해인수녀가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히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런 시구를 들을 때 공감하시는 분들이라면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을 보니(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민음사),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인지 및 사고 능력은 30%나 더 낫고, 살찔 확률은 10%나 더 높다고 합니다. 고혈압이나 심장마미 발생율은 거의 40% 높고, 스트레스 지수는 50%나 더 높다고 합니다. 외로운 사람은 병에 걸릴 확률은 대단히 높고, 삶의 만족도는 대단히 낮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여러모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에도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다”(시102:6-7)는 탄식이 실려 있겠습니까?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무수한 접촉이 이루어지지만 진정한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며 문자를 받고 있지만 마음을 담은 대화를 속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굳이 누구를 따돌려서가 아니라, 화폐경제에 기반을 둔 도시 생활이라는 것 자체가 깊은 만남이 필요 없는 피상적인 거래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회학자들도 있습니다(Georg Simmel, 1858~1918).
이런 세상에서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광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람의 영혼까지도 사고파는 세상의 탐욕스런 정체를 보여 주시기 위해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광야로 데려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계17:3). 광야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홀로 서 있는 자리입니다. 세상의 번잡함을 떠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직면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철저하게 깨닫고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무릎 꿇어야 하는 자리가 광야입니다.
외로움을 잊으려고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하는 모든 노력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진정한 사귐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인격과 인격의 참된 만남, 겸손과 사랑으로 채워진 진정한 배려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외로움입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어 본 사람은 외로울 때 자존심 상하지 않으면서 솔직하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있어 본 사람은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상처 입은 영혼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줄 수 있습니다. 외로우면 가까운 교회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참된 만남과 진정한 사귐을 경험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4월 8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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