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질문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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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박용태목사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던 세례요한은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란 사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스스로를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지도 못할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흥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기꺼이 쇠하는 길을 걷겠노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안드레와 같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례요한이 나중에 자신의 판단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예수님께 질문하는 장면이 성경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11장 2절과 3절을 보면,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질문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기꺼이 대답해 주십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고 하시면서 자신이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약속과 소망을 이루는 분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의심과 회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의심과 회의에 빠졌습니다.
물론 세례요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생각했던 메시야와 예수님의 행동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세례요한은 심판자로서의 메시야를 생각했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것(마3:12)’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알곡과 쭉정이들을 구분해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쭉정이 같은 죄인을 고치고 치료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생각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애초에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바른 믿음에 대하여 이처럼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질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질문하는 세례요한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질문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의문이 있는데도 물어보지 못하고 꾹꾹 눌러 두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질문을 용납하지 않는 맹목적인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건강한 신앙이란 정직한 질문에 대하여 바른 답을 얻을 때 더 든든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정직한 질문은 더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2월 1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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