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다녀와서(이명숙집사)
2014.02.1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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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다녀와서
이명숙 집사
지난해 2월에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온 터라 올해는 참석할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는데 이구 집사님께서 의료봉사 사역이 있어서 많은 의사나 간호사가 필요한데 아직 지원자가 많지 않다며 함께 가기를 은근히 부탁하셨다. 거룩한 부담이 밀려왔다. 사실은 남편이 안 된다고 말할 거라 예측하며 캄보디아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대뜸 다녀오라고 그것도 막내딸 주은이랑 함께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함께 가겠다고 의사를 밝히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연차는 다행히 쉽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출발 전 사단의 공격이라 여겨지는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면서 마음이 힘겹고 낙심이 되려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단의 공격임을 금방 알아차리고 맞서 싸우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이번 단기선교는 준비 모임 중에 함께 그 땅 언어를 공부했고 그 언어를 현지에서 어눌하게나마 직접 사용하면서 사역했던 게 참 좋았고 보람 있었다. 캄보디아는 참 가난한 나라였다. 우리나라 60년대 정도의 생활수준이라고 했다. 어렴풋하지만 정말 우리 어릴 때는 그렇게 살았던 거 같다. 그래도 우린 그보단 나은 환경이었지만 말이다. 캄보디아의 자연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땅 사람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풍족히 먹지 못하고 깨끗이 씻지도 못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다 헤어진데다 오염도 심한 옷을 입고 있었고 주거환경도 열악하고 비위생적이었다. 우리는 4개의 마을을 찾아가 의료와 어린이 사역을 펄쳤다. 까또읏, 오스바이, 꺼쯔름, 쯔방 마을이었다. 둘째 날 찾아간 오스바이 지역은 면소재지여서 그런지 그나마 생활수준이며 생활환경이 좀 나아 보였다. 아이들 모습도 더 말끔하고 표정도 밝고 우리에 대한 경계심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잘 다가와 주었다. 그곳에선 까또읏 지역보다 몇 배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리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진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어린이 사역만 이루어졌다. 덕분에 의료팀은 생각지도 않았던 휴식의 시간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아 어린이 사역 부스에 자연스럽게 투입되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가장 잊지 못할 지역이 꺼쯔름이라는 섬 지역이었다. 스떵뜨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는데 우리는 거의 3시간이나 여객선을 타고 그 지역에 들어갔다. 사실 그 섬에서 스떵뜨랭으로 나오려면 카누로 20분 정도 이동해서 나온 후 오토바이로 1시간 정도면 된단다. 그 지역으로 우리가 탄 배가 가까워지자 지역 주민들이 다 선착장 가까이 서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가 배에서 내려 바로 육지로 오르자마자 위치한 초등학교에 들어설 때는 전교생이 모두 교문 앞에 마주보며 나란히 서서 우리가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 주면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며 맞이해 주었다. 우리 모두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섬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진료를 할 때 보니까 이가 까맣게 썩거나 노랗게 착색된 이들도 많았다. 담배를 피웠거나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마약을 하는 이들도 많다는 사실도 나중에 들었다. 흙먼지가 날리고 맑은 물도 보이지 않고 먹을 것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 척박한 그들의 환경. 어쩌면 평생을 그 섬에 갇혀 살 다가 그 섬에서 죽어갈 그들의 삶이 한없이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되물림될 게 뻔한 그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우리가 그 섬에서 돌아올 때도 그 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선착장에 나와 우리가 떠나오는 걸 끝까지 지켜보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섬 밖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아니면 섬 밖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면서 늘 그렇게 메콩강을 바라보며 사는 습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뒤로 하고 그 섬을 떠나오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나라.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도 경제 활동을 해야 살아질 정도로 가난한 나라. 그런 나라 캄보디아에서 정 성국, 고 미숙 선교사님이 살고 계셨다. 14살짜리 아들 인철이와 함께. 정 성국 선교사님의 모습이 내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디스토니아라는 질병을 10년 넘게 앓고 계신다고 했다. 근육이상긴장증이라는 병인데 초기에 잘 치료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병이었다. 중국 선교 기간에 발병한 것 같았다. 한국에 계셨으면 서둘러 치료하고 호전될 수 있었을 텐데. 불수의적으로 근육이 긴장되면서 몸이 뒤틀리는 모습을 자주 관찰할 수 있었다. 통증도 심하다고 하셨다. 우리가 돌아오는 날 선교사님은 혼자 시앰립에서 스떵뜨랭까지 8시간이나 운전을 하면서 가시기 위해 우리를 공항까지 배웅하신 후 우리보다 먼저 출발해 가셨다. 마음이 짠하니 아려왔다. 그 아픈 몸으로 그 땅 구석구석 다니며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계신 것을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우리의 방문이 조금이나마 선교사님께 위로와 격려가 된 거 같아 마음이 기쁘고 뿌듯했다. 그 땅에서 먹었던 대통 밥, 바나나 잎 밥, 여러 과일들, 스떵뜨랭에서의 첫째 날 고 미숙 선교사님의 육개장, 현지인들이 해주셨던 이상한 현지 음식과 밥, 대박 삼겹살, 앙코르와트와 똔래삽 호수 수상 마을 탐방한 날 먹은 뷔페 음식, 그리고 앙코르 호텔 아침 식사 등 잊지 못할 맛과 추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청년 시절에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인생이 아닌 다른 이들을 조금이나마 섬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기억하시고 단기 선교 팀원이 되어 다른 나라들을 방문케 하시고 이렇듯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함께했던 26명의 팀원 모두가 그 땅에서 우리 각자에게 보여주신 것들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어주신 마음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부분을 찾아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대해 본다. 할렐루야!!
이명숙 집사
지난해 2월에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온 터라 올해는 참석할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는데 이구 집사님께서 의료봉사 사역이 있어서 많은 의사나 간호사가 필요한데 아직 지원자가 많지 않다며 함께 가기를 은근히 부탁하셨다. 거룩한 부담이 밀려왔다. 사실은 남편이 안 된다고 말할 거라 예측하며 캄보디아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대뜸 다녀오라고 그것도 막내딸 주은이랑 함께 다녀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함께 가겠다고 의사를 밝히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연차는 다행히 쉽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출발 전 사단의 공격이라 여겨지는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면서 마음이 힘겹고 낙심이 되려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단의 공격임을 금방 알아차리고 맞서 싸우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이번 단기선교는 준비 모임 중에 함께 그 땅 언어를 공부했고 그 언어를 현지에서 어눌하게나마 직접 사용하면서 사역했던 게 참 좋았고 보람 있었다. 캄보디아는 참 가난한 나라였다. 우리나라 60년대 정도의 생활수준이라고 했다. 어렴풋하지만 정말 우리 어릴 때는 그렇게 살았던 거 같다. 그래도 우린 그보단 나은 환경이었지만 말이다. 캄보디아의 자연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땅 사람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풍족히 먹지 못하고 깨끗이 씻지도 못하고 가난한 모습으로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다 헤어진데다 오염도 심한 옷을 입고 있었고 주거환경도 열악하고 비위생적이었다. 우리는 4개의 마을을 찾아가 의료와 어린이 사역을 펄쳤다. 까또읏, 오스바이, 꺼쯔름, 쯔방 마을이었다. 둘째 날 찾아간 오스바이 지역은 면소재지여서 그런지 그나마 생활수준이며 생활환경이 좀 나아 보였다. 아이들 모습도 더 말끔하고 표정도 밝고 우리에 대한 경계심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잘 다가와 주었다. 그곳에선 까또읏 지역보다 몇 배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리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진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어린이 사역만 이루어졌다. 덕분에 의료팀은 생각지도 않았던 휴식의 시간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아 어린이 사역 부스에 자연스럽게 투입되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가장 잊지 못할 지역이 꺼쯔름이라는 섬 지역이었다. 스떵뜨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는데 우리는 거의 3시간이나 여객선을 타고 그 지역에 들어갔다. 사실 그 섬에서 스떵뜨랭으로 나오려면 카누로 20분 정도 이동해서 나온 후 오토바이로 1시간 정도면 된단다. 그 지역으로 우리가 탄 배가 가까워지자 지역 주민들이 다 선착장 가까이 서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가 배에서 내려 바로 육지로 오르자마자 위치한 초등학교에 들어설 때는 전교생이 모두 교문 앞에 마주보며 나란히 서서 우리가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 주면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며 맞이해 주었다. 우리 모두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섬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진료를 할 때 보니까 이가 까맣게 썩거나 노랗게 착색된 이들도 많았다. 담배를 피웠거나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마약을 하는 이들도 많다는 사실도 나중에 들었다. 흙먼지가 날리고 맑은 물도 보이지 않고 먹을 것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 척박한 그들의 환경. 어쩌면 평생을 그 섬에 갇혀 살 다가 그 섬에서 죽어갈 그들의 삶이 한없이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되물림될 게 뻔한 그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우리가 그 섬에서 돌아올 때도 그 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선착장에 나와 우리가 떠나오는 걸 끝까지 지켜보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섬 밖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아니면 섬 밖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면서 늘 그렇게 메콩강을 바라보며 사는 습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뒤로 하고 그 섬을 떠나오면서 우리 모두는 각자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나라.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도 경제 활동을 해야 살아질 정도로 가난한 나라. 그런 나라 캄보디아에서 정 성국, 고 미숙 선교사님이 살고 계셨다. 14살짜리 아들 인철이와 함께. 정 성국 선교사님의 모습이 내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디스토니아라는 질병을 10년 넘게 앓고 계신다고 했다. 근육이상긴장증이라는 병인데 초기에 잘 치료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병이었다. 중국 선교 기간에 발병한 것 같았다. 한국에 계셨으면 서둘러 치료하고 호전될 수 있었을 텐데. 불수의적으로 근육이 긴장되면서 몸이 뒤틀리는 모습을 자주 관찰할 수 있었다. 통증도 심하다고 하셨다. 우리가 돌아오는 날 선교사님은 혼자 시앰립에서 스떵뜨랭까지 8시간이나 운전을 하면서 가시기 위해 우리를 공항까지 배웅하신 후 우리보다 먼저 출발해 가셨다. 마음이 짠하니 아려왔다. 그 아픈 몸으로 그 땅 구석구석 다니며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계신 것을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우리의 방문이 조금이나마 선교사님께 위로와 격려가 된 거 같아 마음이 기쁘고 뿌듯했다. 그 땅에서 먹었던 대통 밥, 바나나 잎 밥, 여러 과일들, 스떵뜨랭에서의 첫째 날 고 미숙 선교사님의 육개장, 현지인들이 해주셨던 이상한 현지 음식과 밥, 대박 삼겹살, 앙코르와트와 똔래삽 호수 수상 마을 탐방한 날 먹은 뷔페 음식, 그리고 앙코르 호텔 아침 식사 등 잊지 못할 맛과 추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청년 시절에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인생이 아닌 다른 이들을 조금이나마 섬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기억하시고 단기 선교 팀원이 되어 다른 나라들을 방문케 하시고 이렇듯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함께했던 26명의 팀원 모두가 그 땅에서 우리 각자에게 보여주신 것들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어주신 마음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부분을 찾아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대해 본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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