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로 올라가자(선인오집사)
2014.11.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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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벧엘로 올라가자
선인오 집사
창세기 35장을 보면 위기에 처한 야곱을 하나님은 벧엘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진작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나님을 처음 만난 장소인 벧엘로 가기 원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야곱은 벧엘이 아니라 조금 더 살기 좋은 세겜에 정착하다가 딸인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이를 분하게 여긴 야곱의 아들들의 복수로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비로소 벧엘에 가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원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장소 “벧엘”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본인들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는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려야 한다. 나 또한 내 안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이방 신상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분주함과 염려, 근심” 이였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게 되면 환자가 좋아지기도 하지만 일부는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좋아지게 되면 그 기쁨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만, 안 좋아지는 환자로 인한 근심과 스트레스는 훨씬 크게 느껴지고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다. 또한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직장에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은 그 무게로 인해 내 마음에 근심을 더 얹어 놓는다. 지나친 분주함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지게 하기도 하고, 또한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근심은 내 영혼을 낙담하게 만들어 하나님과 교제를 방해하게 된다.
내 경우에는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는 내 마음속의 “염려와 근심”을 없애야 할 것 같다. 또한 지나친 분주함은 어느 정도는 필요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할 정도라면 역시 이방 신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염려와 근심 등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함에서 생겨나는 나의 오만함인 것 같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모든 걱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넘겨드리고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가 벧엘에서 원하시는 것일 것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선인오 집사
창세기 35장을 보면 위기에 처한 야곱을 하나님은 벧엘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진작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나님을 처음 만난 장소인 벧엘로 가기 원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야곱은 벧엘이 아니라 조금 더 살기 좋은 세겜에 정착하다가 딸인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된다. 이를 분하게 여긴 야곱의 아들들의 복수로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비로소 벧엘에 가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원하는 장소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장소 “벧엘”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본인들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는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벧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려야 한다. 나 또한 내 안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이방 신상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분주함과 염려, 근심” 이였다. 병원에서 환자를 보게 되면 환자가 좋아지기도 하지만 일부는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좋아지게 되면 그 기쁨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만, 안 좋아지는 환자로 인한 근심과 스트레스는 훨씬 크게 느껴지고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다. 또한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직장에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은 그 무게로 인해 내 마음에 근심을 더 얹어 놓는다. 지나친 분주함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지게 하기도 하고, 또한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근심은 내 영혼을 낙담하게 만들어 하나님과 교제를 방해하게 된다.
내 경우에는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는 내 마음속의 “염려와 근심”을 없애야 할 것 같다. 또한 지나친 분주함은 어느 정도는 필요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할 정도라면 역시 이방 신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속의 염려와 근심 등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함에서 생겨나는 나의 오만함인 것 같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모든 걱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넘겨드리고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가 벧엘에서 원하시는 것일 것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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