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담임목사님)
2014.06.0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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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
박용태목사
옛 어른들이 쓰는 표현 중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과연 배운 사람답다던가 아니면 못 배운 티가 난다고 했습니다. 옛어른들은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의 차이는 말이나 행동거지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지식이라는 것이 그랬습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물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를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부였습니다. 사람됨의 도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는 그 자체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장인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듯이 공을 들여 수고해야 하는 일이 공부였던 것입니다. 어떤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그것을 마음과 삶 속에 담아내는 것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 옛어른들은 글을 배우고 난 후에는 일반적으로 생활의 도덕과 윤리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이를테면 천자문을 배우면서 글을 익히고 나면 그것을 기초로 사자소학/소학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사자소학은 이해하기 쉬운 네 글자로 일상생활의 규범을 정리해 둔 것입니다. 사자소학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父母有命(부모유명)하시거든, 俯首敬聽(부수경청)하라, 坐命坐聽(좌명좌청)하고 立命立聽(입명입청)하라. 이 구절의 뜻은 ‘부모님께서 명하는 것이 있으시거든 머리를 숙이고 공경히 들어라. 앉아서 명하시면 앉아서 듣고 서서 명하시면 서서 들으라’는 뜻입니다. 또 行勿慢步(행물만보)하고 坐勿倚身(좌물의신)하라 口勿雜談(구물잡담)하고 手勿雜戱(수물잡희)하라 이 문장은 ‘걸어갈 때에 걸음을 거만하게 걷지 말고 앉을 때에 몸을 기대지 말라 입으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손으로는 장난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초적인 공부를 할 때부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자세로 말해야 할지를 배우면서 그것을 내면화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거지를 보면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오늘날에는 공부라는 것이 사람이 살아갈 윤리와 도덕을 배운다기보다는 정보와 단순한 기술적 지식을 배우는데 치중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배운 사람이 자신을 절제하거나 자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모름지기 배운다는 것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대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오욕칠정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 더 나아가 배운 사람과 짐승 같은 사람의 차이는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을 통제하며 절제하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하고 가치 있는 행동은 욕망을 통제하면서 보다 귀한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헌신과 결단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다 귀한 가치와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부터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모쪼록 말씀과 은혜의 법을 잘 익혀서 배운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5월 2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옛 어른들이 쓰는 표현 중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과연 배운 사람답다던가 아니면 못 배운 티가 난다고 했습니다. 옛어른들은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의 차이는 말이나 행동거지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지식이라는 것이 그랬습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물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를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부였습니다. 사람됨의 도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는 그 자체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장인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듯이 공을 들여 수고해야 하는 일이 공부였던 것입니다. 어떤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그것을 마음과 삶 속에 담아내는 것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 옛어른들은 글을 배우고 난 후에는 일반적으로 생활의 도덕과 윤리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이를테면 천자문을 배우면서 글을 익히고 나면 그것을 기초로 사자소학/소학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사자소학은 이해하기 쉬운 네 글자로 일상생활의 규범을 정리해 둔 것입니다. 사자소학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父母有命(부모유명)하시거든, 俯首敬聽(부수경청)하라, 坐命坐聽(좌명좌청)하고 立命立聽(입명입청)하라. 이 구절의 뜻은 ‘부모님께서 명하는 것이 있으시거든 머리를 숙이고 공경히 들어라. 앉아서 명하시면 앉아서 듣고 서서 명하시면 서서 들으라’는 뜻입니다. 또 行勿慢步(행물만보)하고 坐勿倚身(좌물의신)하라 口勿雜談(구물잡담)하고 手勿雜戱(수물잡희)하라 이 문장은 ‘걸어갈 때에 걸음을 거만하게 걷지 말고 앉을 때에 몸을 기대지 말라 입으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손으로는 장난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초적인 공부를 할 때부터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자세로 말해야 할지를 배우면서 그것을 내면화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거지를 보면 배운 사람과 못배운 사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오늘날에는 공부라는 것이 사람이 살아갈 윤리와 도덕을 배운다기보다는 정보와 단순한 기술적 지식을 배우는데 치중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배운 사람이 자신을 절제하거나 자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모름지기 배운다는 것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대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오욕칠정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 더 나아가 배운 사람과 짐승 같은 사람의 차이는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을 통제하며 절제하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하고 가치 있는 행동은 욕망을 통제하면서 보다 귀한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헌신과 결단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다 귀한 가치와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부터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모쪼록 말씀과 은혜의 법을 잘 익혀서 배운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5월 2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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