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세상에 맞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박용태 목사)
2015.02.0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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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높여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이 온 세상과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매인 사람이 됩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순복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배자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이 새롭게 되는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도리어 세상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상당한 정도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교행위로 축소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종교 의례가 되었기 때문에 예배가 지나치게 비정치적, 탈경제적, 탈 문화적인 행위로 변해버렸습니다. 예배를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하기는커녕 예배하는 사람 자신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해 단지 내면의 평안이나 누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을 꿈꾸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며 살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예배가 우상숭배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삶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지 못한 채, 내면의 평안과 위로만 구하는 종교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삶과 삶의 현장,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세상에 예배 행위가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다른 우상을 섬기는 예배와 어떻게 다릅니까? 우상을 섬기는 예배는 자신을 위한 예배요 어떤 초월적 힘을 빌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행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가겠노라 고백하는 헌신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세상의 질서에 대항하고 맞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고난과 아픔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를 통해 내면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예배 자체가 고난입니다.
특히나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그러지고 부패한 세상에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어떻게 편안하고 즐겁기만 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타락한 세상, 원통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현재의 부패한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입장에 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불의한 세상이라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해방과 구원을 위한 꿈을 꾸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쉼 없이 행동하게 됩니다. 예배가 예배자를 사명의 자리로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 부패한 질서 안에서 낙을 누리던 사람들은 이런 예배자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타락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며 부패한 질서에 맞서는 예배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 없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굴복하면서 불의한 세상에 맞서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월 3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이 새롭게 되는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도리어 세상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상당한 정도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교행위로 축소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종교 의례가 되었기 때문에 예배가 지나치게 비정치적, 탈경제적, 탈 문화적인 행위로 변해버렸습니다. 예배를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이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하기는커녕 예배하는 사람 자신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해 단지 내면의 평안이나 누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을 꿈꾸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며 살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예배가 우상숭배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삶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지 못한 채, 내면의 평안과 위로만 구하는 종교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삶과 삶의 현장,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세상에 예배 행위가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다른 우상을 섬기는 예배와 어떻게 다릅니까? 우상을 섬기는 예배는 자신을 위한 예배요 어떤 초월적 힘을 빌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행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아가겠노라 고백하는 헌신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세상의 질서에 대항하고 맞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고난과 아픔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배를 통해 내면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더 편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예배 자체가 고난입니다.
특히나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그러지고 부패한 세상에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어떻게 편안하고 즐겁기만 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타락한 세상, 원통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현재의 부패한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입장에 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불의한 세상이라면 변화가 필요합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해방과 구원을 위한 꿈을 꾸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쉼 없이 행동하게 됩니다. 예배가 예배자를 사명의 자리로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 부패한 질서 안에서 낙을 누리던 사람들은 이런 예배자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타락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며 부패한 질서에 맞서는 예배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십자가 없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굴복하면서 불의한 세상에 맞서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월 3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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