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박용태 목사)
2014.12.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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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에는 그림언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네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든 이삭이든 야곱이든 자식 낳는 일이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의 경우 이스마엘 외에는 100세가 되기까지 자녀를 출산하지 못했습니다. 자신과 아내가 나이가 많고 늙어 더 이상 출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곡식단을 묶는데 요셉의 곡식단이 일어서고 다른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둘러서서 절을 한다’거나(창37:7)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창37:9), 장면을 보았습니다. 요셉이나 다른 형들은 그 꿈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훗날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와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땅에 엎드려 절했을 때 요셉은 어릴 때 꾸었던 그 꿈을 기억해 냈습니다(창42:9).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스스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대한 그림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상력을 자극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 약속하실 때도 굳이 아브라함을 이끌어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보게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창15:5). 장막 안에서 그냥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보게 하시고 생각하게 하시고 상상력을 자극하시면서 그림처럼 그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는 것은 우리 영혼에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상상력이란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제한되기 쉽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란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때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분주한 일상에 정신없이 쫓겨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는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처럼 폐쇄된 공간에 앉아서 단조롭고 수동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영혼은 더욱 메마르고 피폐해 질 것입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라고는 개인적이고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의 본질적인 한계가 무엇인지도 생각할 겨를이 부족합니다. 매일매일 해결해야 할 자잘한 문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의 짓눌려 살다보면 영적인 고민을 깊이 있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스크류테이프의 편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영혼의 본질과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고민이 오늘 점심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하는 걱정에 밀려 버리는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던 벅찬 기쁨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 예수님의 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더 좋은 은혜와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인데 장차 천국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위로와 안식에 대하여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할 때도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다면 새로운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한 상상력을 발동해 보시기 바랍니다.(12월 16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곡식단을 묶는데 요셉의 곡식단이 일어서고 다른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둘러서서 절을 한다’거나(창37:7)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창37:9), 장면을 보았습니다. 요셉이나 다른 형들은 그 꿈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훗날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와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땅에 엎드려 절했을 때 요셉은 어릴 때 꾸었던 그 꿈을 기억해 냈습니다(창42:9).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스스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대한 그림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상력을 자극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 약속하실 때도 굳이 아브라함을 이끌어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보게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창15:5). 장막 안에서 그냥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보게 하시고 생각하게 하시고 상상력을 자극하시면서 그림처럼 그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는 것은 우리 영혼에 상당한 유익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상상력이란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제한되기 쉽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이란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때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분주한 일상에 정신없이 쫓겨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라고는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처럼 폐쇄된 공간에 앉아서 단조롭고 수동적인 활동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영혼은 더욱 메마르고 피폐해 질 것입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라고는 개인적이고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의 본질적인 한계가 무엇인지도 생각할 겨를이 부족합니다. 매일매일 해결해야 할 자잘한 문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의 짓눌려 살다보면 영적인 고민을 깊이 있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스크류테이프의 편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영혼의 본질과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고민이 오늘 점심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하는 걱정에 밀려 버리는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던 벅찬 기쁨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 예수님의 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더 좋은 은혜와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인데 장차 천국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위로와 안식에 대하여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할 때도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다면 새로운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한 상상력을 발동해 보시기 바랍니다.(12월 16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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