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미션트립을 마치고 - 윤정아(중등부)
2016.01.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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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9일 AM 4:30 교회에서 목사님 기도 후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그날따라 유독 날씨가 추웠는지 창문에는 성에가 끼었고 나는 덜덜 떨면서도 얕은 잠을 청했다. AM 8:00 인천 국제공항 도착. MK들과 재회할 겨를도 없이 짐 나르고 추위에 떨다가 공항에 들어섰다. 나는 이번이 해외에 나가는 게 아예 처음이고, 첫 해외선교에 비행기도 처음 타보는 거라 다 신기하고 낯설어서 졸졸 쫓아만 다녔는데도 매우 피곤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정신적으로 매우 시달렸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문제없이 통과해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할 때 너무 긴장돼서 옆 친구들 손도 잡았는데 별 느낌이 없어서 김만 샜다. 3시간 정도 타고 홍콩에 도착했다. 나가는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낯선 언어에 기가 죽는 느낌이 들었다. 오로지 간단한 영어 단어나 이미지만 보고 길을 찾았다. 1시간 동안 백화점 같은 데서 조별로 사진 콘테스트를 했다. 워낙 신기한 게 많아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싶었지만 길 잃는 게 무서워서라도 참았다. 이후 홍콩을 아시는 분 인도에 따라 거리를 구경했는데 사람도 많고 발걸음도 빨라서 앞사람 쫓아가기에 바빠 제대로 구경한 게 별로 없었다. 첫 해외지역이라 그런지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물론 그때 당시엔 장장 3시간 동안 쉼 없이 걸은 여파로 인해 다리 아프고 목마르고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떠올랐다. 물론 덕분에 12시간 비행기 중 10시간은 정말 죽은 듯 잤다. 자고 일어나니 기내식 먹고 착륙 시간이었다. 매우 상쾌했다. 드디어 도착한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숨이 탁 막히는 효과가 탁월했다. 날씨가 정말 말 그대로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난 분명 24도-35도 사이래서 봄 날씨 정도를 생각했건만 나중에 들어보니 그날 최고 기온이 45도였다. 정말 기함할 정도로 높았는데 체감상 온도는 한국의 상당히 더운 여름날 정도? 습기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더웠지만 찝찝하다거나 그렇진 않고 다만 햇빛이 강렬할 뿐. 이대로 가면 새까맣게 타서 다들 못 알아볼까 봐 열심히 선크림을 발랐다. 첫날 케이프타운까지 도착하고 나서는 정신없이 적응하느라 바빴다. 다음날은 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선교사님 댁에서 한국의 Happy New Year도 챙기고, 2015년 가장 감사한 일이나 새해에 하나님께 바라는 소망 같은 걸 서로 나누기도 했다. 이후 오후에는 다같이 사파리 탐험을 갔는데 오늘이 선교사님의 생신이셔서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하필 차멀미를 하는 바람에 별로 먹진 못했지만, 생선살이 포동포동한 게 아주 맛있었다. 본격적으로 사파리 탐험을 하니까 정말 초원을 달려서 동물을 만나러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운전하시는 분이 이것저것 알려주는 내용도 많아서 흥미로웠다. 사파리에선 코끼리, 임팔라, 기린, 얼룩말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났는데 그중 얼룩말 엉덩이가 참 예뻤던 게 기억에 남는다. 두드려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다. 다녀온 후 저녁부터는 King's Kids 캠프에 참가하기로 되어있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선교사님 댁에서 가까운 YWAM 베이스로 갔다. 여기는 12월 31일이 정말 큰 축제인지 밤에 파티를 하니 예쁘게 차려입으라고 해서 최대한 꾸미고 갔다. 파티도 처음이고 그곳 사람들과도 첫 만남인지라 많이 어색해하고 긴장했는데 뜻밖에도 거기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고(물론 영어였지만) 인사를 나눴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져서 참 신기했다.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고 해피 뉴 이어!를 건배하듯 외친 후에 음악에 맞춰 신나게 인사하러 다녔다. 남녀구분 없이 서로 껴안고, 축복하고, 사진 찍고, 음식을 나누며 긴 시간을 보냈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서인지 괜히 웃음이 나고 즐거웠다. 물론 아직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건 부끄럽고 어색해서 먼저 다가가는 건 어려웠다. 다음날은 파티로 인해 오후 1시부터 스케줄이 시작됐다. 각자 정해진 곳 청소도 하고, 오후에는 힙합과 드라마 중 하나를 선택해서 연습했는데 그날그날 연습한 걸 저녁때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나는 드라마에 들어가서 롤리팝 걸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간단하겠지 생각하고 들어간 거였는데 말없이 동작과 세세한 표정으로만 나타내야 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 원체 다양한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기도 했고, 남 앞이라 부끄럽기도 했다. 배운 춤이나 드라마는 나중에 나갈 노방 전도를 위함이다. 저녁에는 Family에 들어가게 됐는데 1,2,3 중 나는 1에 들어가게 됐다. 여기서 Family는 나중에 노방 전도갈 때나 킹스킹즈에서 서로 챙겨주는 정말 가족 같은 모임이다. 이후 가족들에게 여러 도움되는 정보도 받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안면을 텄다. 킹스키즈 캠프의 오전은 참 여유롭다. 1시간 정도 혼자 QT시간을 가지는데, 특히 드넓은 잔디밭 한군데에 자리 잡아 이것저것 조용히 생각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하나님과 긴밀히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혼자 하는 묵상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거기서 정해준 질문에 답변해보기도 하고, 앞뒤 구절을 통째로 다 읽어보기도 하면서 내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물론 그럼에도 어려운 일은 항상 존재했다. QT를 한 후에는 스터디 시간이 있는데 난 정말 한국에서 하는 공부를 하는 줄 알았더니 강의를 듣는 거였다. 매일 다른 사람이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는데 유익한 시간이 됐다. 특히 파 아저씨의 Dream에 관한 강의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캠프가 끝날 무렵, 드디어 노방 전도를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시간을 가지는데 거의 축제급이었다. 다들 분주하게 준비하고 연습하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 그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단상에 왕의 의자를 놓고 홀로 불빛이 들어와 그곳을 바라보며 내가 연습했던 모든 것과 더불어 나의 마음까지도 바친다는 걸. 중간에 앞으로 나와 기도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기도마저 자유롭다. 누워서도 하고, 의자에 기대서도 하고, 특이한 자세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아닌 오로지 하나님과 나만의 소통이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큰 감동이었고, 남아공에 와서 신앙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얼마 없다는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예배를 통해 노방 전도를 나가기 전 스스로가 느꼈던 불안감 혹은 불확실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다음날 진짜 실전으로 돌입하기 전에 Clean Heart라는 걸 했다. 나가기 전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시간 및 서로에게 미안했던 것 사람들 앞에서 사과하는 시간인데 다들 부끄러움 없이 사과하고, 용서한다는 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친구한테 사소한 잘못 하나 사과하기도 어렵게 다가오는데 사람들 앞에서 하는 사과는 얼마나 어려울까, 쉽지 않은 일인데. 많이 배워가는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실전에서는 먼저 조를 짝지어서 미리 길거리에 나가 공연을 한다고 입소문을 냈다. 그곳 환경이 많이 낯설어서 그저 다가오는 아이를 받아주고, 함께 무리지어 가는 게 다였지만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우리의 공연이 꿈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공연이 끝나고선 또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 한명씩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를 하며 전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다음날 또다시 노방 전도를 나갔다. 이때는 한국팀이 먼저 나가서 아이들을 초대했는데 양손에 손을 붙잡고 걸어가면서 이름을 물어보고 나이를 물어봤다. 이곳 어감이 익숙지 않아서 몇 명밖에 기억하지 못했지만 선명한 건 부슬레, 나끼타, 에드메리. 이 세명이다. 먼저 나에게 다가와 내 이름을 물어봐 주고 한 아이들. 같이 손을 잡고 가면서 집집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소개해줬다. 자기의 할아버지, 이모, 친구들까지. 어쩐지 이 아이들 한명 한명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꿈이나 삶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싶어서 이름을 적어왔다. 혹시나 무심코 잊어버릴까봐. 아이들과의 만남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환히 웃어주는,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참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무언가 보답을 해주고 싶었고 유독 기운이 넘쳐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단순히 그런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은 상상 이상이다. 나는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킹스키즈를 통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과 더 친밀해지고, 나에게는 천천히 성장해 가는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기회가 너무도 소중했음을 안다. 남아공을 다녀온 후로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내게는 없다고 믿었던 하나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게 가장 큰 구원이고, 나와 하나님과의 소통을 꿈꾸는 건 큰 은혜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의 두려움을 아시는구나, 지금 내게 주어진 답이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일까. 자연스럽게 주어진 생각들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남아공은 내가 처음으로 나간 해외였고 단기선교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아쉬웠고, 돌아오고 나서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생각난다. 다음번에 또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망설임 없이 OK를 외치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회를 더욱 가치 있게 쓰고 싶다. 주님이 보시기에 기쁘신 일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그런 King's Kids가 나의 꿈이 되었다.
실전에서는 먼저 조를 짝지어서 미리 길거리에 나가 공연을 한다고 입소문을 냈다. 그곳 환경이 많이 낯설어서 그저 다가오는 아이를 받아주고, 함께 무리지어 가는 게 다였지만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우리의 공연이 꿈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공연이 끝나고선 또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 한명씩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를 하며 전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다음날 또다시 노방 전도를 나갔다. 이때는 한국팀이 먼저 나가서 아이들을 초대했는데 양손에 손을 붙잡고 걸어가면서 이름을 물어보고 나이를 물어봤다. 이곳 어감이 익숙지 않아서 몇 명밖에 기억하지 못했지만 선명한 건 부슬레, 나끼타, 에드메리. 이 세명이다. 먼저 나에게 다가와 내 이름을 물어봐 주고 한 아이들. 같이 손을 잡고 가면서 집집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소개해줬다. 자기의 할아버지, 이모, 친구들까지. 어쩐지 이 아이들 한명 한명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꿈이나 삶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싶어서 이름을 적어왔다. 혹시나 무심코 잊어버릴까봐. 아이들과의 만남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환히 웃어주는,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었다. 참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무언가 보답을 해주고 싶었고 유독 기운이 넘쳐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단순히 그런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은 상상 이상이다. 나는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이 밖에도 킹스키즈를 통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과 더 친밀해지고, 나에게는 천천히 성장해 가는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기회가 너무도 소중했음을 안다. 남아공을 다녀온 후로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내게는 없다고 믿었던 하나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게 가장 큰 구원이고, 나와 하나님과의 소통을 꿈꾸는 건 큰 은혜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의 두려움을 아시는구나, 지금 내게 주어진 답이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일까. 자연스럽게 주어진 생각들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남아공은 내가 처음으로 나간 해외였고 단기선교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아쉬웠고, 돌아오고 나서 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 생각난다. 다음번에 또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망설임 없이 OK를 외치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회를 더욱 가치 있게 쓰고 싶다. 주님이 보시기에 기쁘신 일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그런 King's Kids가 나의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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