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하나님이 일꾼을 부르시는 방법 (박용태목사)

본문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람을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기드온이나, 또 사무엘이나, 다메섹 도상의 바울이 이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직접적인 부르심은 대개 거역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마귀도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이단 교주들은 초자연적인 부름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합니다만 마귀가 하는 짓거리에 불과합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할 때 그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성도, 특히 영적 지도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체험은 잘못될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두 번째 어떤 필요가 부르심입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고통과 아픔이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 되는 것입니다. 왼손잡이 사사 에훗이 어떻게 모압왕 에글론을 암살하게 되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에훗은 모압 왕에게 바치는 조공단을 인솔하는 대표였는데, 그 틈을 타서 거사를 벌인 것입니다. 의협심에서 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활동할 때 영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노예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서 노예무역이 커다란 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윌버포스는 노예무역 폐지를 자신의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특별한 음성을 들었던 것이 아니라 필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필요는 보는 눈이 열릴 때, 그것을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어도 그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강도만난 사람을 만났지만 고통당하는 사람의 필요를 자기 사명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사람만이 그 사람의 곤궁한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도와주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볼 줄 모른다면 눈 뜬 맹인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 되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 공동체를 통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암몬을 물리쳤던 입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어떤 필요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형제들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이 암몬의 침략을 받고 있을 때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길르앗장로들이 자신을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암몬과의 싸움에 앞장섰고 또 하나님이 입다를 통해서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입다는 공동체의 부름에 반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어떤 필요를 보게 하심으로, 또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필요를 무시하고, 공동체를 통한 부르심을 무시한 채 하나님의 음성만 들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드온과 300용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드온은 직접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지라도 나머지 300용사는 필요에 대한 반응이었고, 공동체를 통한 부르심에 순종한 것입니다.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통당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월 6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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