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의인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2015.04.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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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세상에는 선과 악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은 단순한 개념적 구분이 아닙니다. 선한 말이 있는가 하면 남을 해치는 악한 말이 있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선한 일이 있는가 하면 이웃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악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2:17)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세상에서 선한 말을 하면서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악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려고 하다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해 놉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도망쳤던 적이 있습니다(삼상21:1-6). 아히멜렉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고파하는 다윗에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내 주고, 또 칼을 주기도 했습니다. 원칙을 따지자면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설병을 먹을 수 없는 신분이었지만 아히멜렉은 원칙을 따지기보다는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원리원칙을 따지기보다 배고픈 사람을 불쌍히 여겼던 아히멜렉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막2:24-27). 그런데 아히멜렉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만큼 선한 일을 했지만 바로 그 일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히멜렉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읍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삼상22:18-19). 다윗을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사울왕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선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처럼 옳은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주 전 재임 중 많은 비리를 저질렀던 정옥근 전해군참모총장이 구속된 일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2009년 당시 해군현역장교였던 김영수소령이라는 분이 군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비리를 지휘계통을 따라 보고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일종의 내부고발 형식으로 언론에 제보를 했는데 결국 그 일 때문에 군복을 벗게 된 일이 있습니다. 당시 해군 내에서 이루어지던 비리문제는 꼬리 자르기 식의 수사로 끝나 버렸고, 당시 정옥근해군총장이 불의에 대항하던 김영수소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서 보자면 불의한 사람은 멀쩡하고 도리어 불의에 대항하던 사람만 억울한 꼴이 된 셈이 된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진실하고 정직하다고 해서 항상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정치와 경제, 법조계나 언론, 경찰 등 중요한 영역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악의 카르텔>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결국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세상의 악한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한 세상, 포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선한 일을 하며 선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위로하며 격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불의에 대항하며 선한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불의에 대항하는 삶을 살다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을 책임져주고, 돌보아 주는 일도 해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상처 입은 영혼들을 지지하고 붙들어 주면서 교회는 공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의로운 사람들의 피난처요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4월 21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해 놉 제사장 아히멜렉에게로 도망쳤던 적이 있습니다(삼상21:1-6). 아히멜렉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배고파하는 다윗에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내 주고, 또 칼을 주기도 했습니다. 원칙을 따지자면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설병을 먹을 수 없는 신분이었지만 아히멜렉은 원칙을 따지기보다는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원리원칙을 따지기보다 배고픈 사람을 불쌍히 여겼던 아히멜렉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막2:24-27). 그런데 아히멜렉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만큼 선한 일을 했지만 바로 그 일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아히멜렉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읍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삼상22:18-19). 다윗을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사울왕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선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처럼 옳은 일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주 전 재임 중 많은 비리를 저질렀던 정옥근 전해군참모총장이 구속된 일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2009년 당시 해군현역장교였던 김영수소령이라는 분이 군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비리를 지휘계통을 따라 보고했지만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일종의 내부고발 형식으로 언론에 제보를 했는데 결국 그 일 때문에 군복을 벗게 된 일이 있습니다. 당시 해군 내에서 이루어지던 비리문제는 꼬리 자르기 식의 수사로 끝나 버렸고, 당시 정옥근해군총장이 불의에 대항하던 김영수소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서 보자면 불의한 사람은 멀쩡하고 도리어 불의에 대항하던 사람만 억울한 꼴이 된 셈이 된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진실하고 정직하다고 해서 항상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처럼 정치와 경제, 법조계나 언론, 경찰 등 중요한 영역에서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악의 카르텔>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산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결국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코 세상의 악한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한 세상, 포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선한 일을 하며 선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위로하며 격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불의에 대항하며 선한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불의에 대항하는 삶을 살다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을 책임져주고, 돌보아 주는 일도 해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의로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상처 입은 영혼들을 지지하고 붙들어 주면서 교회는 공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의로운 사람들의 피난처요 버팀목이 되어야 합니다. (4월 21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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