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활을 꿈꾸십니까? (박용태목사)
2015.04.1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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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엊그제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절은 일 년에 한번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실상 매 주일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부활이었으며 또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을까요?
먼저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 앞에서 음식도 드시고, 고난의 흔적도 직접 만져 볼 수 있었던 진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소위 영적 부활이 아니라, 육체의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역시 사도신경을 따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영혼의 불멸은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몸이 다시 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고전15:35),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바울이 몸의 부활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땅의 형체를 주시는 하나님이 하늘의 형체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적 부활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장차 경험하게 될 부활도 육체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은 부활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떤 물리적 공간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비록 죄와 더러움은 제거 될 것이지만, 현재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몸과 어떤 연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는 부활을 경험한 새로운 몸을 입고 모든 선한 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노동과 공부, 각종 예술적 활동과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로 말미암아 새하늘과 새땅은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 즐거움은 더욱 활발하게 증폭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하여 묵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단순히 내세, 피안세계에 대한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 또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부터 부활의 소망에 따라, 부활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먼저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매이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십니다(히2:15).
또 부활의 소망은 세상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자랑이 하나님 앞에서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악과 불의가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국 죽음과 어둠의 세력이 깨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으면 타락한 세상에서 흔들림이 없이 주의 일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고전15:58). 선한 일을 하다가 장애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환경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타락한 세상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순교자적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생명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십자가 짊어지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것처럼 타락한 세상에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 결국 승리할 것이며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부활의 소망은, 믿는 이를 세상의 죄와 불의에 대한 싸움, 복음의 증인석으로 불러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과 최후승리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돈과 불의한 권력 등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짓누르는 악한 세력을 대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꿋꿋이 따라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월 7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먼저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들 앞에서 음식도 드시고, 고난의 흔적도 직접 만져 볼 수 있었던 진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소위 영적 부활이 아니라, 육체의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역시 사도신경을 따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영혼의 불멸은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몸이 다시 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고전15:35),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바울이 몸의 부활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땅의 형체를 주시는 하나님이 하늘의 형체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육체적 부활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장차 경험하게 될 부활도 육체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은 부활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떤 물리적 공간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몸’은 비록 죄와 더러움은 제거 될 것이지만, 현재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몸과 어떤 연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는 부활을 경험한 새로운 몸을 입고 모든 선한 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노동과 공부, 각종 예술적 활동과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들로 말미암아 새하늘과 새땅은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 즐거움은 더욱 활발하게 증폭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하여 묵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단순히 내세, 피안세계에 대한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 또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부터 부활의 소망에 따라, 부활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먼저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매이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십니다(히2:15).
또 부활의 소망은 세상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자랑이 하나님 앞에서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악과 불의가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결국 죽음과 어둠의 세력이 깨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으면 타락한 세상에서 흔들림이 없이 주의 일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고전15:58). 선한 일을 하다가 장애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환경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타락한 세상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순교자적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생명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십자가 짊어지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것처럼 타락한 세상에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 결국 승리할 것이며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부활의 소망은, 믿는 이를 세상의 죄와 불의에 대한 싸움, 복음의 증인석으로 불러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과 최후승리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돈과 불의한 권력 등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짓누르는 악한 세력을 대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꿋꿋이 따라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월 7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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