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불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습니다. (박용태목사)

본문

예수를 잘 믿으면 착하고 유순한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사에 고분고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겸손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위에 맹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만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출15:26). 특히 하나님 앞에서 의와 공도를 행하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풍조에 대해서는 대항하며 맞서게 됩니다.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에 순종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골1:13).’ 이것은 마치 출애굽과 같습니다.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은 한 때 애굽이 정해놓은 규칙, 애굽이 만든 법에 따라 살았습니다. 애굽에 순종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과 홍해 도하사건 등을 통해 애굽의 힘과 권세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더 이상 애굽에 굴복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순종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권위가 다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권위가 있습니다. 순종하기보다는 대항하고, 맞서야 할 악한 권세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법과 규칙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법과 명령을 지킬 때,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는 이 규칙을 누가 만들었는가? 왜 만들었는가? 이 법과 규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애굽의 법과 규칙은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삼고 비참한 고통 가운데로 몰아넣었습니다. 세상의 법과 규칙, 세상의 문화 가운데는 이처럼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한 것들이 있습니다. 악한 법과 규칙에 대하여는 순종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됩니다.
물론 법과 규칙을 만드는 세력,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는 세상 권세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과 규칙을 대항하려 하다 보면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은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아이를 다 나일강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낳았을 때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웠습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애굽 왕에게 맞설 힘이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아이를 살려 보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히브리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다 죽여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던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 심지어 나일강에서 목욕하다가 모세가 담겨 있던 갈대상자를 발견한 애굽왕 바로의 공주조차도 애굽왕의 명령에 불복했습니다. 히브리인의 아기인줄 뻔히 알면서도 모세를 다시 나일강에 던져 넣지 않고 자기 아들로 삼아 길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왕 바로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며 맞선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순히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타락한 세상, 불의한 법과 부당한 명령에는 힘을 다해 불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2월 24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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