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박용태 목사)

본문

요즘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2장 11절에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을 자기 형제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누굽니까? 모세는 바로왕의 딸, 애굽 공주의 아들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을 자기 형제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바로왕의 궁궐에서 자라난 모세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 특별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세가 애굽 사람의 압제 아래 고되게 노동하는 이스라엘, 애굽 사람에게 얻어맞고 있는 이스라엘을 형제로 여겼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것이 모세가 보여준 믿음의 행동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궁궐에서 누릴 수 있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고난 받는 이스라엘 편에 섰던 모세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사람과 동류의식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 우리 믿음을 드러내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출입하면서도 예수 믿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 하지 않고, 세상 사람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뭔가 모르게 어색한데,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전혀 부담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과 동류의식을 갖지 않고 고난 받는 이스라엘을 형제로 여긴 것은 궁극적으로 그에게 복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조롱과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교회가 세상의 가난한 사람과 억눌리는 사람보다는 억압하고 압제하는 세력 편에 서기 때문입니다. 최근 지난 정부가 저질렀던 여러 가지 정책적인 실패와 비리가 일부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연생태계에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온 4대강 사업이나 아직 그 손실규모조차 다 드러나지 않은 자원외교 등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일은 앞으로 상당한 기간 우리 사회에 고통과 논란을 불러 올 것입니다. 문제는 지난 날 우리나라의 유명한 목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권을 노골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명박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신앙적 결단에 속한 것인 양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결과를 두고 말하자면 그분들은 영적으로 눈먼 인도자요 벙어리 개와 같았습니다. 우리나라를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이를 훌륭한 지도자감이라 판단하고 목사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 날 어떤 형태로든 이명박정부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목사들은 공개적으로 회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교회 안에 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들 편에 서 있기를 좋아하고 낮고 천한 사람보다는 큰소리치며 위세 부르는 사람 곁에 서 있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누구 편에 서 있는가? 어떤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느냐는 것이 우리 믿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낮고 천한 사람, 연약한 죄인들 곁에 머물러 있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고통당하는 이웃들 곁에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1월 2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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