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눈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박용태목사)

본문

눈물 흘리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눈물은 약한 사람이나 흘리는 것이라 여깁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 지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눈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시편에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하는 탄식이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고통 중에 신음하는 성도의 눈물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고 계시다는 고백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눈물을 신비하고 성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눈물을 받아서 모아 두는 눈물병이 있었습니다. 아픔으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유리나 토기로 만든 병의 깔때기 모양의 아구를 통해 눈물을 받았습니다. 평소에는 밀봉했다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눈물을 모았습니다. 성경시대 사람들은 ‘눈물을 주의 병에 담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눈물 방물 하나라도 허투루 보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헤아려 마음에 담아 두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많이 우는 사람이 큰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시편에는 “비록 통곡할 수밖에 없는 눈물골짜기로 지날지라도 그곳에 많은 샘이 터질 것이며, 마치 이른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복이 임할 것(시84:6)”이라는 고백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고통과 아픔이 많습니다. 괴로움과 슬픔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어 기도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물로 부르짖을 때 결코 잠잠(시39:12)”하지 않으십니다.
개인적으로 눈물 흘릴만한 고통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별로 힘든 일 없이 평안하게 잘 사는 것은 큰 은혜요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평안할지라도 세상에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신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병든 분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 불의와 사고와 재난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어버린 분들 심지어 정직하게 살려고 하다가 억울한 꼴을 당한 분들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근, 전쟁, 박해, 굶주림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타락한 이 세상에는 온갖 고통과 괴로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짊어질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평안에 도취되어 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들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정말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남들이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짊어지고 우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시119:136). 어쩌면 우리시대야 말로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악과 불의, 또 세상에 물든 연약한 교회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며 울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눈물이 메마른 눈은 성숙한 사람의 눈일 수 없습니다. 요셉이나 다윗을 생각해 보세요. 이전 시대의 악과 무기력을 청산해 내었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눈물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눈물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월 2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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