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상처받지 마세요.박용태목사
2014.08.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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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너무 쉽게 상처받지 마세요.
박용태목사
언젠가 ‘상처 받는 것은 죄’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최근 욥기를 묵상하면서 쉽게 상처받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욥은 의롭고 순전한 사람이었지만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모여든 친구들은 하나 같이 욥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인데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주실 리가 없다. 그러니 빨리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듣기에 억울한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도 부당한 고통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욥기에서 주목 할 것은 욥이 언제나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온갖 논리를 동원해서 모욕하고 비난하며 공격했지만 욥이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대개 사람은 고통 중에 빠져들면 의기소침해 지기가 쉽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꼴이 되었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 답답한 속도 모르고 ‘무슨 남모르는 죄라도 지었기에 저 모양이지’ 하는 투로 말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더 상합니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였을 때 누군가 속상하게 하는 말을 하거든 그 말에 매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상처 주는 그 말을 계속 묵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부로 내 뱉은 그 말을 계속 묵상하고 있으면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기가 쉽습니다. 급기야 그 말에 지배당하다가 결국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영혼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시편기자처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시118:6)” 외쳐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지배당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붙드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속이 상했을 때 그 사건을 일일이 해명하고 억울한 것을 다 밝히려고 들면 상처가 덧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호소하면서 동정을 구하기보다는 십자가에서 부당하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셨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어떻게 보고 감히 그런 말을’하면서 화를 내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속이 상할 때, 혹 우리가 자존심이 너무 세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상처받고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상처를 받는 것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 말에 실수가 많은 연약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처받을 일이 많습니다.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 상처가 우리 삶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상할 때면 욥이나 다른 시편기자들처럼 상한 감정을 속속들이 담아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감정을 담아서 말하기보다는 덕이 되는 말을 골라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상한 마음 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 놓는 것이 좋은 기도가 됩니다. 그처럼 정직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 감정을 만져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에 휘둘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라도 욥처럼 강하고 담대한 심령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7월 2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박용태목사
언젠가 ‘상처 받는 것은 죄’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최근 욥기를 묵상하면서 쉽게 상처받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욥은 의롭고 순전한 사람이었지만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모여든 친구들은 하나 같이 욥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인데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주실 리가 없다. 그러니 빨리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듣기에 억울한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도 부당한 고통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욥기에서 주목 할 것은 욥이 언제나 당당하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온갖 논리를 동원해서 모욕하고 비난하며 공격했지만 욥이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대개 사람은 고통 중에 빠져들면 의기소침해 지기가 쉽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꼴이 되었는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 답답한 속도 모르고 ‘무슨 남모르는 죄라도 지었기에 저 모양이지’ 하는 투로 말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더 상합니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였을 때 누군가 속상하게 하는 말을 하거든 그 말에 매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상처 주는 그 말을 계속 묵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부로 내 뱉은 그 말을 계속 묵상하고 있으면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기가 쉽습니다. 급기야 그 말에 지배당하다가 결국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영혼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시편기자처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시118:6)” 외쳐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지배당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붙드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속이 상했을 때 그 사건을 일일이 해명하고 억울한 것을 다 밝히려고 들면 상처가 덧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호소하면서 동정을 구하기보다는 십자가에서 부당하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셨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를 어떻게 보고 감히 그런 말을’하면서 화를 내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속이 상할 때, 혹 우리가 자존심이 너무 세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상처받고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상처를 받는 것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 말에 실수가 많은 연약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처받을 일이 많습니다.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 상처가 우리 삶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상할 때면 욥이나 다른 시편기자들처럼 상한 감정을 속속들이 담아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감정을 담아서 말하기보다는 덕이 되는 말을 골라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상한 마음 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 놓는 것이 좋은 기도가 됩니다. 그처럼 정직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 감정을 만져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에 휘둘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라도 욥처럼 강하고 담대한 심령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7월 29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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