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2016.06.24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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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주일 예배와 모임이 신앙을 고백하고 유지하는 일종의 영적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일 외에도 여러 가지 모임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행2:46)는 기록을 보면 초대교회는 매일 모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독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로마제국의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공인되지 않은 거의 모든 회합과 모임을 위험하게 여겼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모임 역시 불법으로 여겨 박해를 했습니다. 더욱이 초기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지게 마련이어서 교회 안에도 굳이 자주 모여야 하느냐는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얼마나 자주 모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하여 교회는 모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모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히10:25).
문제는 초대교회는 특정한 모임 장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큰 집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거기서 모였지만 들판이나 숲속에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초기 300년 동안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남의 눈을 피해서 모이느라 이른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 모이기도 했습니다. 또 모임 장소에는 당시 사람들이 신(神)이라고 생각할만한 형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당시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로마시대, 도시 곳곳에 수많은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이 자주 신전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전에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신전에 가는 사람들은 자기 필요를 위해 신전을 찾았습니다. 병이 낫고 싶으면 의술의 신을 찾아가고, 전쟁터에 나갈 때면 마르스신전, 앞날을 점치고 싶을 때는 아폴로 신전을 찾는 등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신전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필요를 위해 모이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명을 위해 모였습니다. 함께 또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 모였던 것입니다(히10:24).
또 우상 신전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신전 예배자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누구와 같이 모이느냐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모임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우고 세상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서로 가르치면서 초신자를 양육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우면서 더욱 믿음으로 살도록 서로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떡을 떼는 것이 아주 중요했는데,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신전제사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나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보다 누구와 만나느냐, 만남을 통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게 되었느냐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와 함께 예배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이, 그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왔다 가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지금 초대교회 당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전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방식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도들의 만남과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6월 21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사도행전을 기록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독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로마제국의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공인되지 않은 거의 모든 회합과 모임을 위험하게 여겼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모임 역시 불법으로 여겨 박해를 했습니다. 더욱이 초기 열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지게 마련이어서 교회 안에도 굳이 자주 모여야 하느냐는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얼마나 자주 모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하여 교회는 모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모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히10:25).
문제는 초대교회는 특정한 모임 장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큰 집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거기서 모였지만 들판이나 숲속에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초기 300년 동안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남의 눈을 피해서 모이느라 이른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 모이기도 했습니다. 또 모임 장소에는 당시 사람들이 신(神)이라고 생각할만한 형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당시 문화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로마시대, 도시 곳곳에 수많은 신전이 있었고, 사람들이 자주 신전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전에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신전에 가는 사람들은 자기 필요를 위해 신전을 찾았습니다. 병이 낫고 싶으면 의술의 신을 찾아가고, 전쟁터에 나갈 때면 마르스신전, 앞날을 점치고 싶을 때는 아폴로 신전을 찾는 등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신전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필요를 위해 모이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명을 위해 모였습니다. 함께 또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 모였던 것입니다(히10:24).
또 우상 신전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신전 예배자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누구와 같이 모이느냐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모임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우고 세상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서로 가르치면서 초신자를 양육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우면서 더욱 믿음으로 살도록 서로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떡을 떼는 것이 아주 중요했는데,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신전제사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나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보다 누구와 만나느냐, 만남을 통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게 되었느냐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와 함께 예배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이, 그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왔다 가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지금 초대교회 당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신전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방식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도들의 만남과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6월 21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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