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칼럼

종교가 병들 때 박용태목사(전주제자교회)

본문

교회 역사를 보면 병든 신앙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습니다. 신앙이 병들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 행복만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안전과 풍요로움, 좀 더 나아가서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신앙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병든 신앙은 이웃의 눈물을 돌아볼 줄 모릅니다. 정의와 공의를 추구할 줄 모릅니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는 열심을 내지만 진리를 위해 불의에 대항하거나 의를 위해 핍박을 받지는 않습니다. 편안한 길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병든 신앙이 유행하는 시대, 종교적 열정은 뜨겁게 나타나지만, 결국 괴로움과 탄식, 세속적인 욕망으로 더럽혀진 결과만 낳을 뿐입니다. 종교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라. 너희의 절기가 내게 무거운 짐이라.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겠다.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사 1:13-17, 발췌).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자라면 당연히 의와 공도를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창 18:18-19). 성경이 말하는 의와 공도의 핵심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특히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고 말씀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와 공도, 사회적 약자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도와준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한 평생 브라질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삶을 살았던 헬더 까마라 주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에게는 빵이 없는가? 이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빵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그들은 나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시혜적 차원의 자선을 넘어서 연약한 사람이라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암5:24).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마땅히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일에, 몰상식과 불의에 대항하는 일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병든 신앙, 타락한 교회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병든 신앙이 유행할 때 교회가 악한 세력, 불의한 권력에게 이용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승만정권이 부정선거를 통해 종신집권을 꿈꿀 때 병든 교회가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유신정권이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교회를 이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명박정권의 4대강사업, 최근 세월호 참사를 덮어 버리거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같은 몰상식한 일을 홍보하는 과정에서도 교회가 이용됩니다. 심지어 병든 종교지도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권력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12월 15일(화) CBS전북방송 5분메시지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5분메시지 매주 화요일 21시 29분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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