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박용태목사)
2015.03.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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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되는 계명이 무엇인가?’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신명기법의 기본정신을 요약해서 답을 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훈에 따라서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마치 십자가의 두 축처럼 중요하게 여깁니다. 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깊이나 진정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활용되는 것이 이웃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요일4:20).
문제는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하는 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웃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했던 율법교사가 했던 질문이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냐?’고 질문하는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 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눅10:30-36). 예수님은 결론삼아 율법교사에게 거꾸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질문하셨습니다. ‘이웃이 누구냐’는 물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옆에 강도 만난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너는 그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주고 있느냐?’고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이웃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강도만난 사람’처럼 우리 시대 잊혀 져 가고 있는 세월호 관련 희생자, 실종자들과 유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법적 시한을 이미 넘긴 상태에서 구체적인 시행령이나 직제·예산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나 여당의 노골적인 비협조와 방해 때문입니다. 온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준 커다란 사고가, 진상조사를 극구 회피하려는 무리들 때문에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은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될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이웃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자신과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사람을 자신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을 때, 이웃 사랑의 범위를 전지구적으로 확장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우리에게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말씀하실 때 결국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상 모든 피조물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온 인류를 온 천지를 뒤덮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으로 뒤덮인 세상을 회복하는데, 사랑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점에서 보자면 영적인 성숙이란, 사랑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기대어, 우리 삶에서부터 이런 사랑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사랑의 범위를 점점 확장해 가는 과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가까운 이웃에게 다가서는 일부터 시작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월 24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문제는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하는 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웃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했던 율법교사가 했던 질문이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냐?’고 질문하는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 <강도만난 사람을 도와 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눅10:30-36). 예수님은 결론삼아 율법교사에게 거꾸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질문하셨습니다. ‘이웃이 누구냐’는 물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네 옆에 강도 만난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너는 그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주고 있느냐?’고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입니까?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이웃은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제사장이나 레위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강도만난 사람’처럼 우리 시대 잊혀 져 가고 있는 세월호 관련 희생자, 실종자들과 유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하기로 한 법적 시한을 이미 넘긴 상태에서 구체적인 시행령이나 직제·예산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나 여당의 노골적인 비협조와 방해 때문입니다. 온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준 커다란 사고가, 진상조사를 극구 회피하려는 무리들 때문에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은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될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이웃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자신과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사람을 자신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을 때, 이웃 사랑의 범위를 전지구적으로 확장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우리에게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말씀하실 때 결국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상 모든 피조물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온 인류를 온 천지를 뒤덮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으로 뒤덮인 세상을 회복하는데, 사랑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점에서 보자면 영적인 성숙이란, 사랑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기대어, 우리 삶에서부터 이런 사랑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사랑의 범위를 점점 확장해 가는 과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가까운 이웃에게 다가서는 일부터 시작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월 24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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