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제자가 되세요. (박용태목사)
2015.03.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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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것이 이른바 빌립보 가이사랴의 신앙고백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 등 위대한 선지자처럼 여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말은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수님의 신분과 정체성이 아직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더욱이 빌립보 가이사랴였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일부러 빌립보 가이사랴로 데려 가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과 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곳을 찾아 가신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빌립보 가이사랴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물줄기와 사시사철 푸른 숲을 이루고 있던 곳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배어 있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여러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 빌립이 이곳에 신도시를 세우고 로마황제와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 가이사랴라고 불렀습니다. 요컨대 빌립보 가이사랴는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신들 앞에 절하고 있는 곳이요, 온 세상을 통치하며 호령하는 황제의 힘과 능력을 기념하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많은 신전에 모셔져 있는 우상이나, 세상을 호령하는 황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 구세주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이었던지, 성경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다고 합니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고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혹독하게 야단을 쳤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이나 십자가를 짊어지는 희생이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 이처럼 고난 받으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제자의 도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고난의 십자가를 외면 한 채 영적인 구원과 함께 세상에서 누릴 온갖 축복에다 천국에서 누릴 영생까지 보장해 줄 그리스도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행복과 풍요로움과 건강과 안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습니다. ‘생명보다 복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친히 십자가 짊어지신 예수님 앞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딧느냐?’고 외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고생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누릴 때 그것을 복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욕심을 품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경쟁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가 아니라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붙들고 항변했던 제자들처럼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답게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려고 하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려하다 보면 자기 부인해야 합니다. 타락한 세상, 눈물과 고난과 희생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따르는 제자 되시길 바랍니다. (3월 1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그리스도, 메시야라는 말은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수님의 신분과 정체성이 아직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더욱이 빌립보 가이사랴였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일부러 빌립보 가이사랴로 데려 가신 것 같습니다. 제자들과 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곳을 찾아 가신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빌립보 가이사랴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물줄기와 사시사철 푸른 숲을 이루고 있던 곳입니다. 생명의 기운이 배어 있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여러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헤롯 빌립이 이곳에 신도시를 세우고 로마황제와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보 가이사랴라고 불렀습니다. 요컨대 빌립보 가이사랴는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신들 앞에 절하고 있는 곳이요, 온 세상을 통치하며 호령하는 황제의 힘과 능력을 기념하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많은 신전에 모셔져 있는 우상이나, 세상을 호령하는 황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 구세주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이었던지, 성경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다고 합니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고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혹독하게 야단을 쳤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부인이나 십자가를 짊어지는 희생이 없이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 이처럼 고난 받으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제자의 도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고난의 십자가를 외면 한 채 영적인 구원과 함께 세상에서 누릴 온갖 축복에다 천국에서 누릴 영생까지 보장해 줄 그리스도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과 행복과 풍요로움과 건강과 안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습니다. ‘생명보다 복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친히 십자가 짊어지신 예수님 앞에서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딧느냐?’고 외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고생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누릴 때 그것을 복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욕심을 품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경쟁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가 아니라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붙들고 항변했던 제자들처럼 고난과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답게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려고 하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려하다 보면 자기 부인해야 합니다. 타락한 세상, 눈물과 고난과 희생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따르는 제자 되시길 바랍니다. (3월 10일(화) CBS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방송원고)
* 박용태목사의 CBS 전북방송 크리스천칼럼 매주 화요일 15: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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