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초대합시다(박용태 목사.
2022.10.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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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난번 구역장MT를 하면서 모인 구역장들에게 질문했습니다.‘스스로 교회를 찾아온 분!’,‘누군가의 초대와 권면을 받고 교회 오신 분’ 손들어 보시라고 했더니, 스스로 예배당을 찾아 나온 사람은 오직 한 분, 그 외 거의 모든 분들은 다 누군가의 초대와 권면을 받아서 예배당에 나온 분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스스로 예배당에 나온 분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먼저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예배당을 찾아 나왔을 것이니,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회 안으로 초대하는 것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물론 초대한다고 해서 금방 교회로 나올 사람은 당연히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저항, 회의, 방황을 거쳐 왔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누군가를 교회를 초대할 때 즉각적인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부당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고, 누군가를 예배 자리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분명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 명을 축복하고 세 명 불신자를 위해 그 분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서 불러가며 축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로서는 영혼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요, 우리가 축복하는 그 영혼은 우리 덕분에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전도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전도가 쉬웠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고후4:4)’ 방해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상황 속에서 전도자들은 비난과 조롱과 멸시와 반대를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죽 하면 우리 예수님조차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비취는 참 빛이었으나,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요1:9-11).
전도가 쉽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며 맡겨 주신 최후의 사명이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지금 교회 불신시대를 살고 있으며, 기독교와 교회를 조롱하기 위해 온 세상 모든 문화영역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역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 때 십자가가 흠모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십자가를 달고 있는 교회는 흠모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우리와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주시는 구주 신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직은 울타리 바깥에 있을 지라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행13:48)이 지금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올 수 있는 어떤 계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영적 철인이 되는 자격 중에 하나가 전도하는 일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분들을 품고 이름 불러 가며 기도하다가, 그 귀한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예배하는 자리로 초대해 내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용태목사)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회 안으로 초대하는 것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물론 초대한다고 해서 금방 교회로 나올 사람은 당연히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저항, 회의, 방황을 거쳐 왔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누군가를 교회를 초대할 때 즉각적인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거부당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고, 누군가를 예배 자리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이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분명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곱 명을 축복하고 세 명 불신자를 위해 그 분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서 불러가며 축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로서는 영혼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요, 우리가 축복하는 그 영혼은 우리 덕분에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전도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전도가 쉬웠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고후4:4)’ 방해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상황 속에서 전도자들은 비난과 조롱과 멸시와 반대를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죽 하면 우리 예수님조차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비취는 참 빛이었으나,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요1:9-11).
전도가 쉽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며 맡겨 주신 최후의 사명이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지금 교회 불신시대를 살고 있으며, 기독교와 교회를 조롱하기 위해 온 세상 모든 문화영역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역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 때 십자가가 흠모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십자가를 달고 있는 교회는 흠모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우리와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주시는 구주 신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직은 울타리 바깥에 있을 지라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행13:48)이 지금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올 수 있는 어떤 계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영적 철인이 되는 자격 중에 하나가 전도하는 일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분들을 품고 이름 불러 가며 기도하다가, 그 귀한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예배하는 자리로 초대해 내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용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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